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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원

Choi Ha-won · 崔夏園

분야
감독, 시나리오
데뷔작품
귀국선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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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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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2

주요 경력

영화진흥공사 부설 영화아카데미 교육 주임 역임
1975년
영화인협회 감독위원회 감사
1986년
공연윤리위원회 전문심의위원 (영화부문)
1986년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영화진흥공사 전무

영화인 정보조사

1937년에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다니던 중 연희 극회라는 연극반에서 활동하며 대학 생활을 보냈고, 군복무 중 완성하여 투고한 <무승부>가 『시나리오 문예』에 당선되어 시나리오 작가로 등단한다(한국영화감독사전). 이성구 감독의 조감독을 거쳐 1968년 황순원의 『나무들 비탈에 서다』를 동명 영화로 연출하며 감독 데뷔한다. 그 이듬 해 역시 황순원의 단편을 영화화한 <독짓는 늙은이>(1969)로 "기성 감독을 압도할만한 실력"(경향신문a)이라는 찬사를 듣는다. 이어 김동리 원작의 『무녀도』(1972), 황순원 원작의 『갈매기』(1974, 영화명은 <갈매기의 꿈>) 등을 영화화한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에 이르면 <타인의 숨결>(1975), <나는 살아야한다>(1976), <비정시대>(1976), <학도의용군>(1976) 등 반공 영화들이 필모그래피에 등장하는데, 이는 당시 영화법에서 규정하던 영화사별 의무제작편수와 문공부에서 선정하는 우수영화에 대한 보답으로 주었던 외화수입쿼터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후일 이에 대해 "이제까지 영화의 좋고 나쁨이 이권과 밀착"하여 "명예나 질을 따질 수 없게 됐던 것이 고통스러웠다"(경향신문b)라고 말하며 영화법 개정을 촉구하기도 했으며, 영화진흥공사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 발제자로 참여해 "방화제작과 외화수입쿼터제"를 분리해 줄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매일경제). 1980년대에 들어서는 조선의 천주교 박해사를 다룬 <초대받은 사람들>(1981), <초대받은 성웅들>(1984) 등을 연출한다. 1989년에는 4년간이나 준비하며, 중국 로케이션 제작을 눈앞에 두었던 <노국공주와 공민왕>이 중국에서의 천안문 민주화 시위 때문에 취소되기도 한다. 1990년대에는 한국영화아카데미와 단국대학교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한편, 2008년에는 영화 연출의 경험을 『영화감독 현장』이라는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68년 4월 13일 5면 경향신문b 1982년 11월 6일 6면 매일경제 1983년 7월 15일 9면 김종원,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작성: 전민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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