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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조명

Chun Jo-myuong · 田朝明

분야
촬영
데뷔작품
애상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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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20

영화제명 개최연도 수상부문 작품명
제1회 백마상영화제 (중도일보영화제) 1966 촬영상 갯마을
제4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1966 촬영상(색채) 잘 있거라 일본땅
제5회 대종상 영화제 1966 촬영상 갯마을
제9회 부일영화상 1966 촬영상 갯마을
제3회 황금촬영상영화제(구 황금촬영상 시상식) 1979 금상 가깝고도 먼 길

주요 경력

1942년
개천군우초등학교 입학
1947년
개천중학교 입학
1949년 6월
중학교 3학년이던 당시 월남. 용산고등학교 4학년 편입
1950~51년 부산과 대구에서 피난 생활
1951년
서울의 잔류대학훈육소에서 1년간 수학

영화인 정보조사

1934년 평안남도 개천에서 태어났다. 소련이 신탁통치하던 시기, 러시아 영화를 많이 보았고, 사진관을 운영하던 부모의 영향을 받아 영화계에서 일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한국영상자료원, 무비위크). 집안이 사상범으로 몰리는 바람에 한국전쟁 이전에 홀로 월남하여, 한양대학교 화공학과에 진학하였다가,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서라벌 예술대학 연극영화과에 입학하여 촬영을 공부한다. 국방부 영화과에서 군복무를 하게 되는데, 서라벌 예술대학 재학 시절, 친하게 지내던 장석준 촬영감독을 선임으로, 당시 대위로 근무하던 김수용 감독과 인연을 맺게 된다(무비위크). 군 제대 후, 김수용 감독의 1959년작 <삼인의 신부>의 촬영을 맡아 촬영 감독으로 데뷔한다. 1966년 <갯마을>의 촬영으로 대종상, 청룡영화상, 부일영화상, 아시아영화제 등 많은 영화제에서 촬영상을 받으며 1960년대 대표적인 촬영감독 중 한명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며, 이후 <혈맥>(1963), <잘 있거라 일본땅>(1966), <증언>(1973), <O양의 아파트>(1978), <레테의 연가>(1987), <김의 전쟁>(1992), <창>(1997), <약속>(1998), <아홉살 인생>(2004) 등에 이르기까지 40여 년 동안 촬영감독으로 활동한다. 1967년 김영수의 단편 소설을 동명영화화한 <소복>, 황순원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잃어버린 사람들> 등 문예영화를 만들며 감독으로도 데뷔하고, <찬란한 슬픔>(1968), <가슴이 터지도록>(1971) 등의 멜로드라마, <신검마검>(1970), <비호상쟁>(1978) 등의 액션, 무협 영화를 연출하는데, 그 가운데 <서산대사>(1972)는 서산대사와 일본의 현장이 도술 대결 펼치는 장면을 특수촬영으로 처리한 것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동아일보). * 참고문헌 동아일보 1972년 12월 26일 8면 "[특집 촬영감독①]한국적 찰나의 모습을 렌즈에 담다!", 무비위크 2009년 3월 13일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설문조사, 2001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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