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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호

Lee Jang-ho · 李長鎬

분야
감독, 제작/기획
데뷔작품
밤하늘의 트럼펫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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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13

주요 경력

1965년~1973년
신필름 조감독
1971년~1972년
민족극단 단원
1984년~1985년
이장호워크숍 설립 및 운영
1986년~
판영화 설립, 대표이사
1986년~2000. 8 중부대학교 연극영화과 부교수

영화인 정보조사

이장호는 홍익대 건축과 재학 당시, 공보처 영화검열관이었던 아버지의 소개로 신필름 연출부에 들어갔다. <천년호>(1969), <이조 여인잔혹사>(1969), <만종>(1970) 등에서 조감독으로 일한 뒤 1974년 최인호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별들의 고향>으로 데뷔했다. 1970년대 한국영화계의 깊은 불황 속에서도 이장호의 데뷔작은 46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원작자인 최인호는 이장호와 서울고등학교 동창으로 절친한 친구사이였으며 영화음악을 담당했던 이장희는 후배였다. 20대의 젊은이들이 의기투합한 이 영화는 1970년대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별들의 고향>으로 그해 대종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했고 두 번째 연출작인 <어제 내린 비>(1974)까지 16만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장호는 충무로의 촉망 받는 신인으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이 시기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어 4년간 영화 활동을 정지당하기도 했다. 1979년 12월 활동 정지가 풀리자 최일남의 소설 『우리들의 넝쿨』을 각색한 <바람불어 좋은날>(1980)로 영화계에 복귀했다. 이 영화는 이전에 이장호가 만든 네 편의 전작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 영화에는 사회를 통찰하는 이장호의 시선이 담겨져 있었다. 이 영화는 1980년대 리얼리즘 영화의 첫 시작이었다. <바람불어 좋은날>은 평단의 찬사를 받았고 이장호는 재기에 성공했다. <바람불어 좋은날>이 시대를 고발하는 영화였다면, <바보선언>(1983)은 시대에 저항하는 영화였다. <바보선언>은 모든 영화적 관습을 파괴하면서, 사회를 비판하는 블랙코미디였다. 이 영화는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지만 이장호는 당대 정권으로부터 문제인물로 낙인찍혀 영화연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시기 이장호는 생계를 위해 문화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상업영화를 주로 연출했다. <무릎과 무릎 사이>(1984), <어우동>(1985), <이장호의 외인구단>(1986)이 연이어 흥행하면서 이장호는 흥행감독으로 변신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 전주대학교 영화영상전공 교수, 서울영상위원회 위원장 등의 일을 하면서 지금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네이버캐스트, 한국영화감독사전). * 참고문헌 네이버캐스트 (http://navercast.naver.com/korean/movieperson/222) 한국영화감독사전 (http://www.kmdb.or.kr/actor/mm_basic.asp?person_id=00001884&keyword=이장호) [작성: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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