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28
수상내역 1
| 영화제명 | 개최연도 | 수상부문 | 작품명 |
|---|---|---|---|
| 제4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여성영화인축제) | 2003 | 공로상 | - |
주요 경력
- 1939~40년 (주)마루제 서적부
- 1940~45년 만주신경음악단 성악부
- 1945~46년 서울중앙방송국 합창단원
- 1946년
- 고려영화사 입사, <죄 없는 죄인>의 스크립터로 영화계 데뷔
영화인 정보조사
1922년에 태어나, 경기고등여학교 재학 시절 영화관에서 많은 영화들을 보며 자라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만주로 건너가, 1940년 신경 음악단의 방송합창단원이 되고, 당시 신경 음악단이 만주영화주식회사인 자매회사였던 이유로 자주 만주영화주식회사를 드나들며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다고 한다(여성영화인사전). 해방 후 서울로 돌아와 중앙방송국(현 KBS) 라디오의 코러스단과 성우를 거쳐, 해방 직후, 최인규 감독의 <죄없는 죄인>(1948)의 스크립터로 영화계에 입문한다(동아일보). 이후 11년간 스크립터를 하고, <조춘>(1959), <사랑의 십자가>(1959), <아아 백범 김구 선생>(1960), <여인천하>(1962) 등의 영화를 거치며 3년 동안 조감독을 한 뒤인 1962년, 무려 14년을 기다린 뒤 40세의 나이로 <여판사>(1962)의 연출을 하며 감독 데뷔하여, 박남옥 감독에 이어 한국영화사상 두 번째 여성감독이 된다. 데뷔작 <여판사>는 당시 실제 사건이었던 여판사 자살 사건을 극화한 것으로 하이클라스 홈 드라마(경향신문)라는 평가를 받는 등 연출력과 소재를 극화시키는 능력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 이후 <홀어머니>(1964), <오해가 남긴 것>(1966) 등 두 편을 더 연출한다. * 참고문헌 경향신문 - 1962년 11월 9일 8면 주진숙 외, 『여성영화인사전』, 도서출판 소도, 2001 [작성: 황미요조]
연계 정보
불러오는 중입니다.
등록된 연계 정보가 없습니다.
관련 콘텐츠
불러오는 중입니다.
등록된 관련 콘텐츠가 없습니다.
수집자료를 불러오는 중입니다.
등록된 수집자료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