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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진 대표 이미지

조문진

Cho Moon-jin · 趙文眞

분야
감독, 시나리오
데뷔작품
돈바람 님바람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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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2

영화제명 개최연도 수상부문 작품명
제6회 대종상 영화제 1967 반공영화각본상 고발
제6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1970 영화부문 신인상 -

주요 경력

1970년
영화인협회 시나리오분과위원회 이사
1980년
영화인협회 감독분과위원회 위원장
1988년
영화감독협회 회장
1988년
UPI 영화직배반대 투쟁위원장
1990년
공연윤리 위원회 영화심의 위원

영화인 정보조사

조문진은 중국 만주에서 출생하였고 건국대학교 정외과를 졸업했다(한국영화감독사전). 대학졸업 후 모현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하다가 수도영화사 신인모집에 응모해 연출부로 합격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하여, 이병일 감독의 <청춘일기>(1959), 이성구 감독의 <젊은 표정>(1960) 등에서 조감독으로 일했다. 조감독 수입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영어세계》 기자로도 잠깐 일했다. 김수용 감독의 조감독이 되면서 다시 영화계로 돌아온 그는 김수용 감독의 연출부로 22편의 영화에 참여했다(동아일보a).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회귀」가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고(한국영화감독사전), 같은 해 김수용 감독의 <까치소리>(1967)를 각색하면서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다(동아일보b). 오랜 조감독 생활 끝에 신성일, 윤정희가 주연을 맡은 유쾌한 홈드라마 <포옹>(1969)으로 감독 데뷔했다(경향신문a). 영화를 만들고 시나리오를 쓰는 와중에도 주간지에 소설을 연재했다(경향신문b). 1984년에는 MBC ‘베스트셀러극장’의 연출을 맡았다(경향신문c). 1988년에는 영화감독협회장직을 맡아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법 개정, UPI영화직배반대 등 영화계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앞장섰다. 1999년에는 남북 이산의 아픔을 주제로 한 <만날 때까지>(1999)가 제23회 몬트리올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룩했다(경향신문d). 2000년대에는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심의위원과 영화감독협회 고문으로 활동하였으며, 『조문진 시나리오 전집』과 소설집인 『2박 3일』을 집필했다.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66년 1월 5일자 6면. 동아일보b 1967년 8월 19일자 5면. 경향신문a 1968년 12월 28일자 5면. 경향신문b 1983년 1월 4일자 11면. 경향신문c 1984년 2월 28일자 12면. 경향신문d 1999년 8월 3일자 29면. 한국영화감독사전 (http://www.kmdb.or.kr/actor/mm_basic.asp?person_id=00001941&keyword=조문진) [작성: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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