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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장호

Byun Jang-ho · 卞張鎬

분야
감독
데뷔작품
태양은 내것이다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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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7

주요 경력

1972~73년 10월 한국 영화 감독협회 부회장
1974~79년 11대, 12대, 13대 한국 영화 감독협회 위원장
1977년
대종출판사 설립
1981~82년 영화 진흥공사 비상임이사
1981~84년 12대, 13대 한국영화인 협회 이사장

영화인 정보조사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4학년을 다니던 1960년 신필름에서 실시한 조감독 공채 모집에 응모하여 합격한다. 여기서 6개월간 조감독 수련기관을 거치고 감독자격을 얻게 되지만, 이 무렵 신필름의 상황이 악화되어 충무로로 나와서 1965년 <태양은 내 것이다>를 연출하지만, 1967년에야 개봉하게 된다. 두 번째 작품인 <정과 애>(1969)부터 흥행에 성공하여, 이후 문예물, 멜로드라마, 액션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연출한다. 액션 장르들은 <명도의 왕과 박>(1970), <현상 붙은 4인의 악녀>(1971), <상해의 불나비>(1971) 등 1970년대 초반의 경력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 <명동잔혹사>(1972)와 같은 경우는 나한봉, 유열, 신봉승 등 시나리오 작가가 공동집필하고, 변장호, 최인현, 임권택 등 세 감독이 세 부분으로 나눠 찍은 옴니버스 영화이다(동아일보). 1970년대 중반 무렵부터는 문예 영화와 멜로드라마 사이를 오가는데, 그 경향의 작품들이 <홍살문>(1972), <비련의 벙어리 삼용>(1973) 등의 문예 영화와 <눈물의 웨딩드레스>(1973), <O양의 아파트>(1978) 등의 호스티스 멜로드라마들이다. 이 시기 호스티스 멜로드라마 연출작들이 모두 흥행적 성공을 거두고, 문예영화 역시 국내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게 되며 <비련의 벙어리 삼용>같은 경우는 <피리부는 삼용>, <천하무적 삼용> 등으로 연작으로 제작 계획이 진행되기도 한다. 이처럼 흥행과 예술적 성과 모두를 낼 수 있는 감독으로서 그 차기작의 캐스팅을 둘러싸고 배우들 간에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경향신문a). 1980년대에는 <미워도 다시 한 번>(1980)의 리메이크로 또다시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문예영화인 <감자>(1987)을 제작한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한국영화인협회에서 감독분과위원회 위원장과 협회장을 맡아 영화법 개정을 통합 자유제작제와 외국영화자본유입 등을 주장하며 한국제작자협회와 마찰을 빚기도 한다(경향신문b). 1980년대 중반부터는 제작사 대종필름을 설립하고, <눈짓에서 몸짓까지>(1986), <감자>(1987), <만무방>(1994) 등을 제작한다.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74년 12월 11일 경향신문b 1982년 3월 19일 12면 동아일보 1972년 6월 6일 8면 매일경제 1974년 7월 15일 8면 [작성: 전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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