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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력
- ■ 주요경력
- 대종상 심사위원
-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 심사위원
- 춘사 영화제 심사위원
- 한국 영화학회 감사
- ■ 주력분야
- 영화를 하나의 미디어 예술로 생각하면 영화연구의 기본방향은 자명해 진다. 즉 영화를 예술적인 관점에서 분석 연구하여 작품이 가지고 있는 작가성을 연구하는 것이 기본적인 접근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한 작가의 작품을 분석하여 예술적 사상을 도출해내고 그 가지를 예술적, 사상적 관점으로 생각하는데 목적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저술내용)영화의 기호와 의미(역서)
- 북한 사회의 이해(북한영화 부문)
- 일본 대중문화의 이해 (영화부문) (저서)
영화인 정보조사
1938년 서울 중구 광희동 2가 157-2번지에서 출생하였다. 광희초등학교와 보성중학교를 졸업하였으며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고려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안현철의 <낙화유수>의 연출부 작업에 참여하면서 영화계에 입문을 하게 되었다. 1963년 <잉꼬부부>를 통해 감독에 데뷔하였다. 이후 작품은 <로맨스 가족>(1963), <낙인찍힌 사나이>(1964), <저 者를 쏴라>(1964), <무명가의 지배자>(1965), <나그네 밤거리>(1966), <그늘진 삼남매>(1966), <악인가>(1967), <사나이 중 사나이>(1969), <죽어도 좋아>(1969), <암흑가의 지배자>(1969), <동경의 무정가>(1970), <여선장>(1970), <홍콩의 마도로스>(1970), <홍콩의 단장잡이>(1970), <맨발로 왔다>(1971), <맨주먹으로 왔다>(1971), <54번가의 마담>(1971), <동경의 호랑이>(1972)가 있다. 1970년대 액션 영화인 <동경의 호랑이>(1971)는 당시의 액션배우 박노식과 김지미가 주연하였다. 히로시마 폭격으로 고아가 된 김종수는 일본의 조직폭력배가 된다. 그는 거기서 조총련인 박덕수에게 이용당해 경찰에 구속되게된다. 사전 전모를 애인 김진숙으로부터 전해들은 그는 탈출하여 덕수를 찾아내어 복수를 한다. 그는 일본을 떠나려 했으나 그만 경찰에 체포되고 만다. 그 이후에도 연출의 이력을 더해가면서 <사나이 훈장>(1973), <낙인>(1974), <후계자>(1974), <흑백대권>(1974),<검은 띠의 후계자>(1975), <황금마담>(1975), <천의 얼굴>(1975), <킹콩의 대역습>(1976), <거대한 음모>(1976), <7호실 손님>(1977), <특명 8호>(1978), <여호신>(1979), <대근이가 왔소>(1980), <괴도출마>(1981), <별명붙은 사나이>(1982), <화야>(1983), <돌아온 장고>(1984), <비내리는 영동교>(1985), <백백교>(1993) 등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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