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130
수상내역 13
| 영화제명 | 개최연도 | 수상부문 | 작품명 |
|---|---|---|---|
| 제2회 부일영화상 | 1959 | 여우주연상 | 지옥화 |
| 제1회 대종상 영화제 | 1962 | 여우주연상 | 상록수 |
| 제5회 부일영화상 | 1962 | 여우주연상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
| 제2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64 | 인기상(여) | - |
| 제4회 대종상 영화제 | 1965 | 여우주연상 |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 |
| 제13회 아시아ㆍ태평양영화제 | 1966 | 여우주연상 |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 |
| 제4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66 | 인기상(여) | - |
| 제5회 대종상 영화제 | 1966 | 여우주연상 | 민며느리 |
| 제9회 부일영화상 | 1966 | 여우주연상 |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 |
| 제5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 2006 | 공로상 | - |
| 제28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 | 2008 | 특별공로상 | - |
| 제17회 춘사국제영화제 (춘사영화제) | 2009 | 춘사대상 | - |
| 제47회 대종상 영화제 | 2010 | 공로상 | - |
주요 경력
- 1943년
- 극단 아랑 입단
- 1947년
- <새로운 맹서>로 영화계 데뷔
- 1953년
- 신상옥 감독과 함께 신필림 설립
- 1966년
- 안양영화예술학교 설립(이사장)
- 1969년
- 언양영화예술학교 취임(교장)
- 1972년
- 극단 배우극장 설립(대표)
- 1984년
- 북한영화 <약속> 감독
- 1986년
- 미국으로 망명
- 1988년
- 수기 <조국은 저하늘 저멀리> 상, 하권(미국, 일본, 한국판) 출간
- 1997년
- 미국 LA에서 연극 <오! 마미> 출연
- 2001년
- 극단신협 대표
- 2002년
- 안양 신필림 영화예술센터 설립(대표)
- 2003년
- 안양신필름예술센터 학장
- 2004년
- 동아방송대학 연극영화과 석좌교수
- 2005년
- 성결대학교 연극영화과 석좌교수
- 2007년
- 제3회 앙드레김 베스트스타어워드 특별상
- 2007년 7월~
- 제1회 천마 신상옥 청년영화제 집행위원회 위원장
- 2007년
- 자서전 <고백> 출간
- 2011년
- 제56회 대한민국예술원상 연극, 영화, 무용 부문 수상자
영화인 정보조사
192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최경순(崔慶順)이다(편집위원회, 김기제). 1943년 배우 문정복(文貞福)의 소개로 극단 아랑(阿娘)에 연구생으로 들어가서 해방 전까지 활동했다. 해방 후에는 재건된 토월회(土月會), 극예술협회(劇藝術協會) 등에서 무대생활을 했으며, 신경균의 <새로운 맹서>(1947)에 출연하면서 영화에도 데뷔했다. 이후 <밤의 태양>(1948), <마음의 고향>(1949) 등의 작품에 출연했다. 전쟁 기간 중에는 피난지 대구와 부산에서 국립극단 신협(新劇協議會)의 주요 무대에 올랐으며, 황남(黃男)의 권유로 신상옥(申相玉)의 <코리아>(1954)에 출연했다. 이를 필두로 본격적으로 신상옥과 신필름 영화의 전문 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꿈>, <젊은 그들>(1955), <무영탑>(1957) 등을 거쳐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부터 흥행에 주가를 올렸다. 이어 <지옥화>(1958), <그 여자의 죄가 아니다>, <자매의 화원>, <춘희>(1959), <로맨스빠빠>, <백사부인>, <돌아온 사나이>(1960) 등 신필름 전속으로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홍성기?김지미의 <춘향전>과 격전을 벌인 <성춘향>(1961)이 크게 성공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1961), <열녀문>(1962), <쌀>, <로맨스 그레이>, <강화도령>(1963), <벙어리 삼룡>, <빨간 마후라>(1964) 등 연이어 대작들을 발표한 그는, 1965년 <민며느리>를 통해 한국영화 사상 세 번째 여성감독으로 데뷔하기도 했다. 감독 작품은 <공주님의 짝사랑>(1967), <총각선생>(1972)으로 이어진다. 또한 후학양성에도 관심을 쏟아 1966년 안양영화예술학교를 설립했으며, 1969년에 교장으로 취임했다. 1970년대에도 지속적으로 영화출연과 극단 배우극장 설립 등 무대 활동을 이어나갔으나, 1978년 안양영화예술학교 교류사업차 방문한 홍콩에서 돌연 북한으로 납치되었다. 이후 뒤이어 북한으로 오게 된 신상옥과 함께 신필름영화촬영소를 세우고 <탈출기>(1984), <소금>, <심청전>(1985) 등에 출연했으며, <약속>(1984)을 감독하기도 했다. 1986년 오스트리아 빈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으며, 1999년 남한으로 귀국했다. 2001년 극단 신협의 대표로 취임했으며, 이듬해에는 안양에 신필름영화예술센터의 설립을 주도했다(최은희). 촬영감독 김학성과 이혼 후 신상옥과 결혼했다. 해방 후 한국영화사를 대표하는 배우라 할 수 있다. * 참고문헌 김기제 편, 『한국연예대감』, 성영문화사, 1962, 203쪽. 최은희, 『최은희의 고백』,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편집위원회 편, 『영화백과 제1권』, 정치평론사, 1975, 147쪽.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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