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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41
주요 경력
- 2008년 6월
- 제7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대표 집행위원
- 2011년 2월
- 부산영상위원회 운영위원
- 2011년
- 제10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대표 집행위원
- 2013년
-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 심사위원
- 2014년
- 제40회 서울독립영화제 본선경쟁 심사위원
영화인 정보조사
1973생 충청남도 온양 출생. 그의 영화입문은 무척이나 파격적이다. 독립영화협의회 워크샵 과정이외에 정규 영화수업을 거의 받지 않은 그는 그야말로 혜성처럼 영화계에 등장했다. 물론 감독은 1993년에 박찬욱 감독을 만나 <삼인조>의 연출부를 지내며 악기점 점원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8천여 만원이라는 초저예산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비평적 찬사를 받음으로써 그는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를 일거에 허물고 단시간 내에 충무로에 입성하게 되었다. “충무로 전대미문의 신화가 탄생했다.” 자칭 하드보일드 액션 릴레이 무비임을 표방한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보도자료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한국영화의 새로운 신화가 탄생했다는 과찬도 있었지만, 참으로 야무진 ‘시네키드’의 등장이라는 데는 대부분 의견의 일치를 보였다. 한마디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아마추어 정신(amateurism)으로 만든 프로페셔널 영화라는 것이다. 1998년부터 틈틈이 찍은 <패싸움> <악몽> <현대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라는 네 개의 단편을 하나로 묶은 이 영화는 흔히 저예산 영화에 주어지는 프리미엄, 즉 어쩔 수 없는 기술적 결함 내지는 조야함을 애써 눈감아주는 식의 온정주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는 최소한 액션장면 연출에서는 나름대로 자기 표현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는 그가 한 인터뷰에서도 밝혀 듯이, 영화에 관한 정규교육 대신에 2000여 편을 상회하는 각종 영화들을 보면서 순전히 독학으로 연출력을 갈고 닦은 결과라고 하겠다. 그는 여세를 몰아서 그 이듬해 <피도 눈물도 없이>라는 본격 액션영화를 연출하게 된다. 이 영화는 그야말로 제목에서 함축하고 있는 대로 피도 눈물도 없는 투견판 사내들과 잡초처럼 질긴 두 여자간에 펼쳐지는 사랑과 배신 그리고 음모를 현란한 액션으로 치장하고 있다. <피도 눈물도 없이>는 몇 가지 측면에서 기존의 한국식 장르영화들과는 구별된다. ‘펄프느와르’라는 신조어로 작품의 장르적 성격을 자체적으로 규정하려는 시도에서도 그런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여기에는 할리우드의 악동이라 일컬어지는 ?틴 타란티노의 영향이 강하게 배어있음은 물론이다. 이미 일정한 경지에 오른 선배 감독들을 적극적으로 모방하고 나아가 차용함으로써 자신의 표현영역을 확대해 가는 것이 바로 그의 최대 강점이기 때문이다. 그는 연기에도 재능을 보여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는 직접 주연으로 출연한 것은 물론 <복수는 나의 것>과 <오아시스>에서도 비중 있는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장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한 부분을 이루게 되는 단편 <패싸움>으로 1998 부산단편영화제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패싸움>이 1999년 인디포럼 99에서 실시된 ‘영화마을’ 차기 지원작에 선정되어 장편영화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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