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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33
주요 경력
- 2006년
- 제27회 청룡영화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 2006년
- 제17회 디나르영화제 심사위원회 위원
- 2010년
- 제12회 뭄바이영화제 심사위원
- 2011년 4월 5일
-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Officier dans l'ordre des Arts et Lettres) 수상
- 1995년
- 몬트리올 영화제 심사위원
영화인 정보조사
1944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조선대학교 영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1966년 합동영화사 주최의 신인배우공모에 참가한 1200여 명 가운데 단 한명으로 선발되어 배우로 데뷔한다(동아일보). 데뷔작은 1959년 홍성기 감독이 영화화한 이래 강대진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된 김래성 원작의 <청춘극장>(1967)이었으며, 데뷔하자마자 그 해 대종상과 청룡영화상에서 각각 신인상과 인기여우상을 받으며 단숨에 스타의 자리에 오른다. 데뷔 이래 매해 30여 편에서 60여 편 가량의 영화를 찍는 동안, 우석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대학원을 진학하여 1971년 <월하의 맹서>(1923)의 이월하부터 최은희까지 여배우들의 변천을 살피는 「영화사 측면에서 본 한국 여배우 연구:1903~1946년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써서 최초의 석사 여배우가 되기도 한다. 1967년 데뷔 이래의 활동으로 문희, 남정임과 함께 1960년대의 이른바 트로이카라 불리게 되며, 그 대표작으로는 <강명화>(1967), <아빠 안녕>(1968), <물망초>(1969) 등의 멜로드라마, <안개>(1967), <까치소리>, <장군의 수염>(1968) 등의 문예물, <그 여자를 쫓아라>(1970), <황금70 홍콩작전>(1970) 등의 액션영화, <내시>(1968), <이조 여인잔혹사>등의 사극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한 장르와 역할을 맡아 연기한다. 1973년부터는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 방학 때 귀국하여 영화를 촬영하는 식으로 작업하였으며, 1976년에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프랑스에서 결혼한 후 잠정 은퇴하고, 파리 제3대학의 대학원에서 영화학을 공부하여 석사학위를 받는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자유부인>(1981), <위기의 여자>(1987) 등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하긴 하나, 1994년 <만무방>을 마지막으로 오랜 동안 침묵한 뒤,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로 컴백한다. * 참고문헌 동아일보 1966년 6월 25일 5면 [작성: 전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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