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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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력
- 1967년
- 영화인협회 회장(1967~1971)
- 1967년
-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부회장
- 1969년
- 영화인협회 이사장
- 1973~81년 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장 (4회 연속 당선 후 사임)
- 1979년
- 한국펜클럽 부회장
- 1989~92년 현대시인협회회장
- (저술내용)1982년 시선집 『역광의 신』
영화인 정보조사
1992년 4월 6일 함경북도 청진 생으로 일본 릿쿄 대학 문학부 시절 일본의 시 문학지 『시학』에 작품을 발표했으며(경향신문b), 귀국 후 박인환, 김규동, 조항 등과 함께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하며 모더니즘 시 운동과 문학평론을 병행했다. 1950년대 영화평론가 협회의 회원으로서 신문 지면에 영화 평론을 쓰고, 협회가 주최하는 강좌에서 한국영화는 반논리적인가라는 강연을 하는 등의 평론가로서 활동을 하는데(경향신문a), 당시 평론에서 지속적으로 비판하는 바는 한국영화계가 너무 익숙한 설화나 역사적 소재에만 집착하거나, 새로운 유행만을 좇음으로써 새로운 시대와 그 도덕성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부족하다는 내용들이었다. 이렇게 평론 활동을 지속하다 1957년 장덕조의 소설 『다정도 병이련가』를 각색하며, 영화 제작 일선에 뛰어든다. 본인이 비판했던 당시 한국영화의 난점은 <삼등과장>(1961), <행주치마>(1964), <마포사는 황부자>(1965) 등 이른바 소시민 코미디 영화를 직접 감독하며 넘어서려 노력하였다. 그러나 후기작인 <장미의 성>(1969)에 이르러서는 동성애, 수간 등 파격적 소재를 통해 당시의 중산층 가정과 그 사회의 균열을 목도하기에 이른다.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57년 6월 1일 4면 경향신문b 1998년 6월 13일 9면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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