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688
수상내역 9
| 영화제명 | 개최연도 | 수상부문 | 작품명 |
|---|---|---|---|
| 제9회 아시아ㆍ태평양영화제 | 1962 | 남우조연상 | 상록수 |
| 제6회 부일영화상 | 1963 | 남우조연상 | 연산군(장한사모편) |
| 제4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66 | 남우조연상 | 군번없는 용사 |
| 제7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70 | 남우조연상 | 봄봄 |
| 제7회 백마상영화제 (중도일보영화제) | 1972 | 남우주연상 | - |
| 제8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 1972 | 영화부문 연기상 | 분례기 |
| 제13회 대종상 영화제 | 1974 | 남우조연상 | 꽃상여 |
| 제14회 대종상 영화제 | 1975 | 특별상(공로부문) | - |
| 제21회 아시아ㆍ태평양영화제 | 1975 | 남우조연상 | 꽃상여 |
주요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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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서울에서 출생했으며, 본명은 허장현(許長顯)이다. 허장강이란 예명은 연출가 서항석이 “뚝섬이 물이 마를소냐, 기나긴 강물처럼 부디 오래살고 대성하길 바란다”라는 뜻에서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동아일보). 서울에서 인문중학교를 졸업하고 이어서 부기학교를 다녔다. 해방 후 극단 백마산을 조직해 <황토를 찾는 사나이>라는 첫 작품을 무대에 올렸으나 흥행에 실패하고, 악극인 박구(朴九)가 이끄는 반도가극단(半島歌劇團)에 들어가 연기자생활을 시작하였다(경향신문).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국방부 정훈국에 들어갔고, 1952년 육군 군예대(KAS)에서 만난 이강천(李康天) 감독의 <아리랑>(1954)에 출연함으로써 영화계에 데뷔하였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듬해 이강천의 <피아골>(1955)에서 ‘만수’ 역으로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이후 이강천의 <격퇴>(1956), 양주남의 <종각>(1958), 김을백의 <72호의 죄수>(1959), 박성복의 <인생복덕방>(1959), 신상옥의 <상록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성춘향>, <연산군>(1961), 이형표의 <서울의 지붕밑>(1961), 이만희의 <7인의 여포로>(1965), <0시>(1972) 등 195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개성 있는 마스크와 특유의 능글맞은 표정연기, 독특한 음색으로 다양한 배역을 섭렵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연산군>으로 부일영화상 남우조연상, <군번없는 용사>로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 <분례기>로 백상예술대상 연기상 등 다수의 연기상을 수상했다. 197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열정적으로 스크린을 누빈 그는, 1975년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연예인축구대회에 참가에 시합을 하는 도중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했다(동아일보). 영화배우 허기호, 허준호가 그의 아들이다.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75년 9월 22일자 8면 동아일보 1975년 9월 22일자 5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27522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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