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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철 대표 이미지

유한철

Yoo Han-cheol · 劉漢徹

분야
시나리오
데뷔작품
재생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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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1

영화제명 개최연도 수상부문 작품명
제23회 대한민국예술원상 1978 연극·영화·무용 부문 -

주요 경력

1947년
대한체육회 이사, 런던올림픽 한국선수단 단장
1965년
시나리오작가협회 부회장
1968년
아이스하키협회 명예회장
1969년
한국올림픽위원회(KOC) 문화위원
1969년
가족계획협회 상임이사 겸 공보위원장

영화인 정보조사

의사이며, 음악, 영화편론가, 시나리오작가이자, 체육인으로, 1917년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나,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를 나왔다. 중학교 때 학교 연주단으로 활동하며 전선음악회에서 1,2등을 하여 음악가의 꿈을 키웠으나, 어머니의 뜻을 존중해 세브란스로 들어가 의사가 된다. 세브란스 재학 시절, 아이스하키 선수로도 활동하여, 이후 대한체육회에서 아이스하키협회 명예회장이 되고, 그의 이름을 딴 유한철배 아이스하키 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세브란스 졸업 후 안성 도립병원에서 안이비인후과 과장으로 근무하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일본으로 건너간다(경향신문). 일본에서 영화수출입업으로 6년 동안 일하고, 1956년 귀국하여 수도영화사 안양촬영소의 상무로 일하며 영화계에 입문한다. 한국에 돌아와 신문지상에 활발히 영화평을 쓰는 한편, 시나리오 작가로서도 데뷔하게 되는데 그 첫 작품이 정비석의 동명소설을 각색한 <낭만열차>(1959)이다.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많은 소설, 방송극을 각색하고,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집필하는데 그 가운데 대표작으로는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1962), <다이알 112를 돌려라>(1962), <사랑의 동명왕>(1962), <김약국의 딸들>(1963), <사랑의 배달부>(1965), <재생>(1969), <옥합을 깨뜨릴 때>(1971) 등이 있다. 1980년 교통사고로 사망하기까지, 170여 편의 극영화 시나리오, 30여 편의 문화영화 시나리오, 500여 편의 영화평론을 남긴다(매일경제).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67년 7월 19일 5면 매일경제 1978년 9월 20일 8면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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