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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재

Lim Hee-jae · 任熙宰

분야
시나리오
데뷔작품
황혼열차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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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3

영화제명 개최연도 수상부문 작품명
제1회 대종상 영화제 1962 각본상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제1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1963 각본상 혈맥
제3회 대종상 영화제 1964 각본상 혈맥

주요 경력

195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기류지>로 등단
1956년
월간지 "여성계" 주간
1957년
시나리오 작가협회 연구 간사

영화인 정보조사

1919년 충청남도 금산에서 태어나, 1938년 이리농림학교를 졸업하고 금산군청에서 근무하다 일본 니혼대학으로 유학하여 예술과를 졸업한다. 해방 전후로 미곡창고회사, 고등학교 교사, 신문 기자 등 여러 직업을 옮겨 다니던 중, 1955년 조선일보 신문춘예 희곡 부문에 「기류지」로 당선되어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동아일보). 1955년과 1956년 사이 「복날」, 「무허가하숙집」, 「고래」 등 단막극을 발표하고 유일한 장막극인 「꽃잎을 먹고 사는 기관차」를 쓴 이후 시나리오로 작업 영역을 옮긴다. 그 첫 작품이 이광수의 『애욕의 피안』을 각색하여 만든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이다. 신상옥 감독과는 <독립협회와 청년 리승만>(1959) 이래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혈맥>(1963), <로맨스 그레이>(1963) 등에서 함께 작업했으며, 이 가운데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와 <혈맥>으로 대종상 각본상을 타기도 한다. 이후 <임금님의 첫사랑>(1967), <황진이의 첫사랑>(1969) 등의 히트작을 내놓았다. 1950년대 중반에는 서울중앙방송국(현 KBS) 제1방송의 라디오 드라마인 <인생역마차>의 각본을 맡는 것을 시작으로(최미진) 1960년대 라디오 드라마인 <불타는 초원>(1966), TV 드라마인 <신부 일년생>(1969) 등을 거쳐 1970년의 TBC의 <아씨>의 각본을 맡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1971년 3월 위암으로 타계했으며, 2005년 고인을 기리는 문학비가 고향 금산에 세워지기도 했다(금산신문). * 참고문헌 동아일보 1971년 4월 3일 5면 금산신문 2005년 3월 31일 박서림, “박서림의 종심만필 16화. 아씨의 임희재 선생", 한국방송작가협회 (http://www2.ktrwa.or.kr/new/?doc=bbs/gnuboard.php&bo_table=park_colum) 최미진, “1950년대 라디오 프로그램 <인생역마차>의 성격과 매체 전이 양상”, 『한국문학이론과비평』 제41집. 2008.12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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