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홍성칠

Hong Seong-chil

분야
제작/기획, 미술
데뷔작품
유정천리 (1959)
DB 수정요청

필모그래피 338

전체보기

수상내역 1

영화제명 개최연도 수상부문 작품명
제3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1965 미술상 흑맥

주요 경력

등록된 주요 경력이 없습니다.

영화인 정보조사

1920년에 태어나(추정), 일본 도쿄의 태평양 미술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귀국하여, 공주, 강릉 등지에서 교편 생활을 하던 중(한국일보), <자장가>(1958)로 영화계에 입문한다. 데뷔 초기에 <내가 낳은 검둥이>(1959), <젊은 표정>(1960), <여자의 일생>(1962)의 미술을 맡아 작업하다가, 1962년 동성영화사에 입사하여 서울역 뒤편 만리동에 촬영소를 건설하며, 미술팀을 꾸린다. 이렇게 꾸려진 팀과 함께 이용민 감독이 연출한 석가모니의 일대기 <지옥문>(1962)의 세트를 완성하는데, 이 세트는 8200m2가 넘는 넓이의 성안에, 약 10미터 높이의 우상이 위치하고, 그 앞에 화형장이 마련되는 등(서울신문) 당시 언론에서 우리 영화 사상의 모뉴먼트를 이루었다고 해서 과언이 아니라는 호평을 듣는다(경향신문). 1964년 제일영화사의 대표가 되어 합동영화사와 함께 서울 원효로에 공동으로 촬영소를 건설한다. 1966년부터는 영화 미술보다는 영화제작과 회사운영에 집중하여, 1967년 당시의 영화사 허가 기준인 아리플렉스급 카메라 3대 이상, 660m2 이상의 스튜디오, 50kw 이상의 조명기구 등을 갖추어 13개 허가 영화사 중 하나가 된다(조선일보). 이후 제일영화사에서 <어느 여배우의 고백>(1967), <강명화>(1967), <동경의 왼솝잡이>(1969) 등의 영화를 제작하나, 1970년 부도 끝에 문을 닫는다(매일경제).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62년 12월 25일 8면 서울신문 1962년 11월 1일 4면 조선일보 1967년 3월 19일 5면 매일경제 1970년 3월 17일 8면 한국일보 1964년 12월 31일 7면 한국영화사연구소 엮음, 『한국영화를 말한다-한국영화의 르네상스3』, 한국영상자료원, 2007년, 519~527쪽 [작성: 황미요조]

연계 정보

불러오는 중입니다.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