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348
수상내역 1
| 영화제명 | 개최연도 | 수상부문 | 작품명 |
|---|---|---|---|
| 제19회 대종상 영화제 | 1980 | 여우조연상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
주요 경력
- 어린 시절 만주로 이주
- 단둥의 안동현고등여학교에서 수학
- 신의주 신연극장 사무원으로 일함. 극장 영사기사 최인규와 결혼
- 1937년
- <심청전>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영화계 입문
- 한국전쟁 중 최인규가 납북된 이후 부산에서 피난 생활. 다방 "수선화" 운영
- 1983년
- 딸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
- 1998년
-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향년 79세로 별세
영화인 정보조사
중국 요녕성 안동고녀를 중퇴하고 신의주 신연극장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1936년 영화감독 최인규와 결혼했다. 남편의 권유로 안석영 감독의 <심청>(1937)과 윤봉춘 감독의 <도생록>(1938)에 출연하면서 영화에 데뷔하였다. 역대 여배우 중에서 가장 짧은 역사를 가지고서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문예봉과 김소영에 버금가는 위치에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애련송>(1939), <수업료>(1940), <집 없는 천사>, <지원병>, <너와 나>(1941), <풍년가>, <우러르라 창공>, <조선해협>, <망루의 결사대(望樓の決死隊)>(1943), <태양의 아들들(太陽の子供達)>, <거경전>(1944), <사랑과 맹세>(1945) 등 주로 내선일체를 강조한 영화에 출연하며, 이 시기 가장 많은 영화에 출연한 배우 중에 한 명이었다. 이로 인해, 친일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한국전쟁 중에 남편인 최인규가 납북되자, 부산으로 가서 ‘산유화(혹은 수선화)’라는 다방을 운영하였다. 다방 ‘산유화’는 부산에 내려온 예술인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해방 이후부터 1980년대까지 <고향의 노래>(1954), <순애보>(1957), <칠공주>(1962), <장마>(1979),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1980) 등 거의 200편에 가까운 영화에 출연하였다. 이 가운데 정진우 감독의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는 대종상 여우조연상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연기 생활 43년 만에 처음 받는 큰 상이다. 1983년 미국으로 건너가 딸과 함께 여생을 보내다가 1998년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생을 마감했다(동아일보; 경향신문; 여성영화인사전; 대중예술인 사전; 김종원). * 참고문헌 동아일보 1998년 4월 2일. 경향신문 1980년 10월 9일 7면. 주진숙, <<여성영화인사전>>, 소도, 2001 <<식민지 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소도, 2006. 김종원,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및 DB구축 감수, 2011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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