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33
제작자 (1개)
수상내역 1
| 영화제명 | 개최연도 | 수상부문 | 작품명 |
|---|---|---|---|
| 제2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 | 1959 | 촬영상 | 생명 |
주요 경력
- 1932년
- 서울 한성중학교 졸업
- 1934년
- 일본 동경전수대학 입학
- 1935년
- 귀국 후 경성촬영소 입사
- 일본 도쿄 신흥키네마 입사
- 1939년
- 일본촬영기술협회 시험 합격 후 신흥키네마에서 3편의 일본영화 촬영
- 한국전쟁 당시 미국공보원(USIS) 소속으로 뉴스기록영화 촬영, 전선에서 부상당하여 금성무공훈장 수여
영화인 정보조사
1913년 경기도 수원에서 출생하여 한성중학교를 졸업한 뒤 1934년 일본의 동경전수대학에서 수학했다. 1935년 귀국하여 경성촬영소에 입사했다. 이후 본격적 촬영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1939년 일본촬영기술협회 시험에 합격, 정회원이 되어 세 편의 일본영화를 촬영했다(식민지시대대중예술인사전). 1939년 방한준 감독의 <성황당>으로 조선에서 촬영기사로 활동하기 시작해, 이후 최인규의 <집없는 천사>(1941), 신경균 감독의 <사랑의 맹서>(1947) 등을 촬영했다. 한국전쟁 당시 종군촬영반 소속으로 다큐멘터리 영화 <정의의 진격>(1951)을 촬영하는 중 부상을 당했다. 이 공로로 금성화랑훈장을 수여받기도 하였다(경향신문a). 1946년 결혼한 배우 최은희와는 전쟁통에 일련의 고난으로 1953년 이혼했다(동아일보). 그 후 이강천의 한국 최초의 시네마스코프 영화 <생명>(1958),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1961), <성웅 이순신>(1962), <아리랑>(1968) 등의 촬영을 맡았다. 1982년 숙환으로 69세의 생을 마감했다(경향신문).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52년 7월 14일자 2면 경향신문b 1982년 11월 20일자 2면 동아일보 1986년 3월 18일자 7면 강옥희 외, 『식민지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소도, 2006. [작성: 김한상]
연계 정보
불러오는 중입니다.
등록된 연계 정보가 없습니다.
관련 콘텐츠
불러오는 중입니다.
등록된 관련 콘텐츠가 없습니다.
수집자료를 불러오는 중입니다.
등록된 수집자료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