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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주

Park Gyeong-ju · 朴景柱

분야
배우, 감독, 제작/기획
데뷔작품
민족의 새벽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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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력

극단 국민좌(國民座), 극단 전진(前進), 극예술협회(劇藝術協會), 극단 신청년(新靑年), 신극협의회(新劇協議會) 등 단원
국립극단 전속배우

영화인 정보조사

1916년 경상남도 군위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박경주(朴庚柱)이다(김기제, 한국영화감독사전). 일본 사와다(澤田) 배우학교를 졸업한 후 극단 국민좌(國民座)를 통해 무대활동을 시작했다. 해방 후 극예술협회(劇藝術協會), 극단 신청년(新靑年), 신극협의회(新劇協議會) 등을 거쳤으며 국립극단의 전속배우로 활동했다(김기제). 영화 데뷔는 1947년에 나온 두 편의 영화, 이규환 감독의 <민족의 새벽>과 신경균 감독의 <새로운 맹서>를 통해서였으며(김기제, 경향신문a, b), 신경균의 <여인애사>(1950), 이경선의 <놀부와 흥부>(1950) 등에 출연했다. 전쟁 후 1955년 제작된 두 편의 영화 <원한의 성>과 <결혼진단>에서 박경주는 주연을 맡아 주목 받았고, 이듬해 안동주와 함께 APK프로덕션을 설립하여 <비류>(1956)의 제작과 주연을 맡았다(한국일보). 1957년에는 미성영화사를 창립하여 직접 주연을 맡은 <김삿갓>을 제작했다(경향신문c, d, 동아일보a, 한국영화감독사전). 이듬해 제작, 출연한 <돌아온 항구(야녀)>(1958)에서는 본래의 감독을 해임하고 본인이 연출까지 겸했다(경향신문e, 한국영상자료원). 제작자로서의 활동은 그 다음해의 <제2의 애정>(1959)까지 이어졌으며(동아일보b), 그 이후로는 1970년대 후반까지 주로 배우 생활에 전념했다.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47년 4월 16일자 2면 경향신문b 1947년 5월 8일자 3면 경향신문c 1955년 7월 7일자 4면 경향신문d 1957년 1월 4일자 4면 경향신문e 1958년 6월 9일자 4면 동아일보a 1955년 4월 30일자 4면 동아일보b 1959년 5월 13일자 2면 한국일보 1955년 12월 14일자 4면 김기제 편, 『한국연예대감』, 성영문화사, 1962, 190쪽. 한국영상자료원 편, 『한국영화를 말한다: 1950년대 한국영화』, 이채, 2004, 38쪽. 김종원 외,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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