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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랑

Lee Hae-rang · 李海浪

분야
배우, 감독
데뷔작품
수우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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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력

1945년
극단 전선 창단
1946년
극예술회 창립
1950년
국립극장 전속극단 신협 창립인 및 대표
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종신회원
1957년
국립극장 극장장

영화인 정보조사

1916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 니혼대학 예술과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대학 재학 중 유학생들과 함께 동경학생예술좌(東京學生藝術座)를 조직해 연기생활을 시작했다. 귀국 후 극예술연구회(劇藝術硏究會)의 후신인 극연좌(劇硏座)에 입단했다. 하지만 극연좌가 일제에 의해 해산 당한 뒤, 대중적 성격이 강한 극단 고협(高協)에 입단해서 연기생활을 이어갔다. 해방 후 좌익 연극에 대항하여 극단 전선(全線)을 창립했으며, 극예술협회(劇藝術協會) 조직에 앞장서기도 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스크린에는 다소 뒤늦게 데뷔했는데, 그의 출연작들로는 신상옥의 <코리아>(1954), 김소동의 <왕자호동과 낙랑공주>(1956), 홍성기의 <여성전선>(1957), 김강윤의 <이름없는 별들>(1959), 권영순의 <흙>(1960) 등이 있으며 필모그래피는 1950년대 중후반에 한정된다. 1962년에는 극단 신협(新劇協議會)에서 제작한 <육체는 슬프다>를 연출했다. 이 작품은 황순원의 소설 『산』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김동원, 박암, 황정순, 문정숙 등이 출연했다(경향신문a). 1950년 국립극장 전속극단 신협 창립인 및 대표를 맡았고, 이후 1957년 국립극장 극장장, 1959년 중앙국립극단 단장, 동국대 연극과 부교수 등을 지냈다. 1965년에는 이해랑 이동극단을 창설해 전국을 돌며 공연을 하기도 했다(경향신문b). 이후 1981년 예술원 부회장, 1984~1987년 예술원 회장 등을 역임했다. 제8·9대 전국구 국회의원에 선출되어 연극계를 잠시 떠나기도 했던 그는, 이후 연극계로 돌아와 <밤으로의 긴 여로>(1986), <황금연못>(1987), <뇌우>(1988) 등을 연출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맥주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고 끝을 맺을 정도로 유명한 맥주애호가였던 연출자 이해랑은, 1989년 자신이 6번째 연출을 맡은 <햄릿> 공연을 앞두고 연습장으로 나가던 중 과로로 사망했다(경향신문c).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61년 10월 20일자 4면 경향신문b 1986년 4월 12일자 5면 경향신문c 1989년 4월 10일자 5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6470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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