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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력
- 1922년
- 조선배우학교 졸업 후 토월회 입단
- 1924년
- 조선극우회 회원
- 1925년
- 조선영화사 단원
- 1936년
- 중앙무대 단원
- 1947년
- 극단 신협 단원
- 1955년
-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
- 1960년
- 방송문회협회 이사, 서울특별시 문화위원
- 1961년
- 한국영화인협회 연기분과 초대위원장
- 1961년
- 방송문화협회 이사 및 서울시 문화위원
- 1966년
- 서울소녀가극단 대표
- 1973년
- 극회 아카데미 대표
영화인 정보조사
복혜숙이 최초로 출연한 영화는 1923년 <월하의 맹세> 이전 조선총독부가 계몽용으로 만든 <방역(防疫)>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1926년에 제작된 극영화 <농중조>를 꼽는다. 이 영화는 조선키네마프로덕션에서 연극을 영화한 작품으로 내용은 청춘남녀의 연애에 관련된 것이었다(동아일보b; 조선일보a; 김종원). 다음해에는 이구영 감독의 <낙화유수>에 출연하였다.(조선일보b). 1928년에는 이규설 감독의 <순정은 신과 같다>(1928), 김영환(金永煥) 감독의 <세 동무>(1928) 등에 출연하였다(대중예술인 사전). 결혼 후 잠시 휴식기를 갖은 후 박기채(朴基彩) 감독의 <춘풍 春風>(1935)에 출연하였다(동아일보a). 이후 안종화(安鍾和) 감독의 <역습>(1936), 최인규(崔寅奎) 감독의 <수업료>(1940), 이병일 감독의 <반도의 봄>(1941), 신경균(申敬均) 감독의 <감격시대>(1943) 등에 출연하였다. 해방 후에는 이규환 감독의 <똘똘이의 모험>, 최인규 감독의 <자유만세>(1946)에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198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35년 11월 23일 3면 동아일보b 1981년 5월 6일 조선일보a 1926년 6월 10일 석간 3면 조선일보b 1927년 10월 8일 석간 3면 <<식민지 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소도, 2006. 김종원,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및 DB구축 감수, 2011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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