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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대표 이미지

김성민

Kim Seong-min · 金聖珉

분야
시나리오, 감독
데뷔작품
반도의 봄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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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력

1936년 8월
일본 주간지『선데이 마이니치』가 주관한 1천만원 현상 대중문예소설에 <반도의 예술가들>로 당선
1937년 1월
『삼천리』에 소설 "봄소낙비" 발표
1940년 6월
장편소설 <녹기연맹> 발표
1941년
3~10월 『녹기』에 소설 "천상이야기" 연재
1941년 8월
장편소설 <혜련 이야기> 발표

영화인 정보조사

1915년 5월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한 김성민은 영화계 입문에 앞서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1936년 8월 일본 주간지 『선데이 마이니치』가 주관한 대중문예소설 현상공모에 「반도의 예술가들」로 당선하여 문단에 데뷔했으며, 『녹기연맹』(1940)과 『혜련이야기』(1941) 등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문단 데뷔작 「반도의 예술가들」은 1941년 이병일 감독의 <반도의 봄>으로 영화화되었다(친일인명사전). 해방 후 1948년 <사랑의 교실>로 감독 및 제작자로 영화계에 데뷔하였다. 그는 1950년대 영화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로 활발히 활동하였고, <망나니비사>(1955), <인생역마차>(1956), <처와 애인>(1957) 등 멜로드라마 장르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한국영화감독사전). 한형모 감독의 <운명의 손>(1954), 이용민 감독의 <포화 속의 십자가>(1956) 등 다수의 반공적 색채의 영화에서 각본을 맡았다. <포화 속의 십자가>는 “전쟁영화라고 하여 지루하거나 건조한 장면 하나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사람의 긴장케 하리만큼 ‘스토리’가 전개”된다는 평을 받기도 하였다(경향신문). 식민지 시기부터 통속적인 이야기와 시국적 소재를 결합해온 그의 작품 스타일은 해방 이후 반공 영화들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1969년 대만에서 사망했다(친일인명사전).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56년 5월 21일자 4면 김종원 외,『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편, 『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 2009, 423-424쪽.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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