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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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력
- 1964년
- 사재를 털어 3월 동대문구 답십리동 산 12번지(현 동대문구 체육관과 동답초등학교 일대)에 대한연합영화사, 일명 "답십리 촬영소"를 설립
- 1964년
- 대한연합영화사 대표
- 1967년
- 한국영화 신용조합 조합장
영화인 정보조사
홍의선은 헌병 대령 출신으로 1964년 3월 동대문구 답십리동 산 12번지(현 동대문구 체육관과 동답초등학교 일대)에 대한연합영화사, 일명 답십리 촬영소를 설립해 영화제작을 시작했다. 허름한 창고를 개조해 스튜디오로 사용하던 당시, 2개의 스튜디오와 연기실, 연기자 대기실, 녹음실, 현상실, 변전실, 식당, 커피숍, 욕실까지 갖춘 답십리 촬영소는 최첨단 영화 촬영소였으며, 촬영소장은 부인인 전옥숙이 맡아 국내 최초의 여성 촬영소장이 되었다(조선닷컴). 답십리 촬영소의 정식명칭은 대한연합영화주식회사로 홍의선과 전옥숙은 <부부전쟁>(1964)을 시작으로 영화제작에 뛰어들었다. <부부전쟁>은 정창화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코믹 멜로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홍의선이 제작을, 전옥숙이 기획을 맡아 <수전지대>(1968), <휴일>(1968), <생명>(1969) 등 60여 편의 영화를 제작했다(경향신문). 1967년 홍의선이 제작하고 이만희 감독이 연출한 <기적>(1967)에 대해 예술윤리위원회가 폴란드 영화 <야행열차>를 표절했다는 해석을 내리며 표절시비에 휩싸이기도 했다(동아일보). 그러나 표절시비에도 불구하고 <기적>에 대한 평단의 반응이나 흥행성적은 나쁘지 않았다(씨네21). 1967년 한국영화업자협회 산하기구로 한국영화 신용조합이 창립되었고 홍의선이 조합장을 맡았는데, 이 조합은 영화업자들에게 싼 이자로 융자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매일경제). 1970년 답십리 촬영소가 문을 닫으면서 홍의선은 제작에서 손을 땠다(조선닷컴). 홍상수 감독이 그의 아들이며, 일본에서 형사재판에 걸린 한국인의 통역을 도맡아한 홍경미가 그의 딸이다(동아닷컴).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64년 11월 30일자 5면. 매일경제 1967년 5월 24일자 4면. 동아일보 1967년 6월 24일자 5면. “[한국영화 후면비사] 영화기관차는 멈추지 않는다”, 씨네21, 2008/06/26. (http://www.cine21.com/do/article/article/typeDispatcher?mag_id=51841) “日법정 한국인 통역전담 홍경미씨 암투병끝 숨져”, 동아닷컴, 2007/01/13. (http://news.donga.com/3//20070113/8395433/1) "2013년까지 답십리 촬영소 복원… 옛 명성 되찾을 것", 조선닷컴, 2010/02/01.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2/01/2010020100094.html) [작성: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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