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104
감독 (1개)
수상내역 2
| 영화제명 | 개최연도 | 수상부문 | 작품명 |
|---|---|---|---|
| 제28회 대종상 영화제 | 1990 | 최우수작품상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
| 제28회 대종상 영화제 | 1990 | 기획상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
주요 경력
- 1967년
- 한국영화업자협회 부회장
- 1967년
- 영화신용조합 운영위원
- 1967년
- 아시아영화제 한국대표단 단장
- 1969년
- 한국영화금고 운영위원
- 1975년
- 한진흥업 부사장
- 합동영화사 부사장
- 서울극장 부사장
영화인 정보조사
이지룡은 성산금융조합에서 서기를 지낸 후 천양건설회사를 설립해 운영했으며, 1954년 명성영화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한국영화감독사전). 1965년 동양영화흥업주식회사의 전무로 있었으며, 1966년 아세아필림의 대표를 맡아 영화수입, 제작에 본격적으로 나섰다(경향신문a). 1968년 제4회 영화예술상 우수영화제작상을 수상하면서 제작 실력을 인정받았다(경향신문b). 그는 영화제작 뿐 아니라 한국영화업자협회 부회장, 영화신용조합 운영위원, 한국영화금고 운영위원 등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영화산업 발전에 힘썼다. 1971년에는 감독으로 변신해 <20인의 여도적>(1971)을 연출했다. 그러나 1970년대 영화계에 불황이 닥치면서 아세아필림의 경영도 어려워져, 1972년 법정등록요건 미달과 제작실적 미달을 이유로 문공부로부터 제작사 등록을 취소당했다. 이후 이지룡은 한진흥업 부사장, 합동영화사 부사장으로 이직해 영화제작을 계속 했다(매일경제, 경향신문c). 1986년 영화제작이 자유화되자 이지룡은 다남흥업을 설립해 영화제작과 수입업을 다시 시작했다. 이지룡의 대표작을 뽑으라면 단연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89)일 것이며, 이 영화는 이문열 원작으로 미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지의 해외로케이션으로 화재가 되는 한편, 흥행에도 성공했다. 이 영화는 대종상영화제 7개 부문을 석권하면서 작품성까지 인정받았다(경향신문d). 이지룡은 <도색부인>(1992)의 제작을 마지막으로 영화계에서 은퇴했다(KMDb). * 참고문헌 한국영화감독사전 (http://www.kmdb.or.kr/actor/mm_basic.asp?person_id=00004910&keyword=이지룡) 경향신문a 1965년 10월 16일자 7면. 경향신문b 1968년 2월 3일자 5면. 경향신문c 1984년 12월 12일자 12면. 경향신문d 1990년 3월 17일자 16면. 매일경제 1975년 2월 14일자 8면. KMDb [작성: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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