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20
수상내역 2
| 영화제명 | 개최연도 | 수상부문 | 작품명 |
|---|---|---|---|
| 제14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 1978 | TV부문 연출상 | 까치야 까치야(KBS1) |
| 제17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 1981 | TV부문 연출상 | 옛날 나 어릴적에(KBS) |
주요 경력
- 1934년 8월 1일
- 부친 김을한, 모친 민덕임 사이에서 1남 3녀 중 장남으로 출생
- 1959년
- 일본 다이에이(大映)영화사 조연출로 입사. 이후 5년 동안 마스무라 야스조, 오즈 야스지로, 요시무라 코자부로 등의 감독과 함께 작업. 주일공보관장 홍경모의 부탁으로 재일교포 영화인 유진식 등과 함께 주일공보관 패션쇼 <한국의 미> 촬영
- 1961년
- 유심평, 최당섭, 유진식, 김덕용 등과 함께 재일한국영화인협회 결성
- 1964년
- 귀국
- 1965년
- 첫 연출작 <만가>를 시작으로 1969년까지 7편의 영화 연출
- 1969년
- <석유란 무엇인가>, <사관 후보생>, <히말라야의 도전>을 비롯하여, 문화영화와 교육영화 제작
- 1972년
- KBS PD로 입사. 첫 작품 <반지>를 시작으로 연출활동 시작
- 1973년
- 단막극 <소년>(김수현 작, 김수동 연출) 미국 에미상 출품
- 1974년
- 일일연속극 <꽃피는 팔도강산> 연출
- 1986년 12월
- KBS 예능국 제작주간
- 1987년 10월
- KBS 예능국장
- 1989년 1월
- KBS 예능국 제작주간
- 1989년 7월
- KBS 방송심의실 심의위원,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 출강
- 1990년 3월
- KBS 예능2국 드라마제작위원
- 1992년
- KBS 정년 퇴임, KBS 영상제작단 PD
- 1994년
- 삼화프로덕션 이사
- 1996년
- 프리랜서 PD 활동,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 출강
영화인 정보조사
김수동은 조선일보 기자와 서울신문 전무를 역임한 김을한(1906~1992)의 아들로 서울에서 출생했다(한국영화감독사전). 이후 한국전쟁을 피해 가족 모두가 일본으로 이민을 갔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아버지를 따라 기자가 되려했으나 외국인의 신분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촬영기사였던 이창용의 소개로 다이에이(大映) 영화사에 입사하였다. 일본의 명감독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부초>(1959)에 참여하면서 연출수업을 했다. 또한 마스무라 야스조, 요시무라 코사부로, 미스미 겐지 등의 작품에 참여하면서 영상과 이야기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신상옥 감독의 일본 로케이션 촬영을 도우며 신상옥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신상옥 감독의 권유로 <만가>(1965)로 한국에서 감독 데뷔를 했다. 신필름에서 독립한 황기성과 함께 두 번째 작품을 기획하고 있을 무렵 이두용이 조연출을 자청하며 찾아왔고 이후 이두용과는 마지막 영화까지 함께 했다. 그가 연출한 영화들의 흥행 성적은 좋지 않았다. 영화 연출에 한계를 느끼고 있던 차에 일본 공보관 행사 때 알게 되었던 홍경모와 극작가 이상현으로부터 TV 드라마 연출제안을 받게 되었다(한국영상자료원). 이후 1970년대 후반까지 KBS의 TV프로듀서로서 텔레비젼 드라마 연출에 전념했다. <만가>의 여주인공 역을 맡았던 황승리가 그의 아내이다(한국영화감독사전). * 참고문헌 『김수동 2010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생애사>』, 한국영상자료원, 2010, 10~13쪽. 한국영화감독사전 (http://www.kmdb.or.kr/actor/mm_basic.asp?person_id=00004916&keyword=김수동) [작성: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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