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40
수상내역 0
등록된 수상내역이 없습니다.
주요 경력
- 1960년
- 영화평론지 《주간영화》 발행인
- 1964년
- 답십리 촬영소 소장
- 1984년
- 시네텔 서울 회장
영화인 정보조사
전옥숙은 국내 첫 여성 제작자이자 국내 첫 여성 촬영소장이다(경향신문a, 조선닷컴). 그녀는 이화여대 국문학과 재학 시절 연극을 하며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고(경향신문d), 1960년 창간한 영화평론지 《주간영화》의 발행인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동아일보a). 1964년 합리적인 영화제작의 터전을 마련하고자 남편 홍의선과 함께 답십리에 9백 평의 영화촬영소를 설립해 국내 첫 여성 촬영소장이 되었다(경향신문d, 조선닷컴). 허름한 창고를 개조해 스튜디오로 사용하던 당시, 두 개의 스튜디오와 연기실, 연기자 대기실, 녹음실, 현상실, 변전실, 식당, 커피숍, 욕실까지 갖춘 답십리 촬영소는 최첨단 영화 촬영소였다(조선닷컴). 답십리 촬영소의 정식명칭은 대한연합영화주식회사로 전옥숙은 <부부전쟁>(1964)을 시작으로 영화제작에 뛰어들었다. <부부전쟁>은 정창화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코믹 멜로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경향신문b). 1965년에는 나병환자인 남편과 소록도에서 생활하면서 남편의 병을 완치시킨 김숙향 여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그대 옆에 가련다>(1966)를 제작했는데, 이는 당시의 주류장르였던 통속멜로드라마를 지양하며 진지한 여성영화를 만들고자 한 시도였다. 이 영화는 전옥숙 기획, 김향 원안, 이정자 각본 등 주요 스탭들이 모두 여성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는 남성중심으로 이루어졌던 1960년대 한국영화계에 여성영화인의 저력을 보여준 하나의 사건이었다(경향신문c). 전옥숙은 일본어에도 능했으며, 1975년부터 우리나라 문학작품을 일본어로 번역해 일본에 소개하는 문학계간지 《한일문예》를 출간하면서 일본예술계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민중언론). 1984년에는 국내 최초의 외주 제작사인 시네텔 서울을 설립해 <베스트셀러극장> 등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했다(동아일보b). 홍상수 감독이 그녀의 아들이며, 일본에서 형사재판에 걸린 한국인의 통역을 도맡아온 홍경미가 그녀의 딸이다(동아닷컴).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60년 7월 7일자 4면. 동아일보b 1984년 10월 25일자 12면. 경향신문a 1965년 8월 25일자 5면. 경향신문b 1964년 11월 30일자 5면. 경향신문c 1965년 8월 25일자 5면. 경향신문d 1968년 10월 21일자 5면. “日법정 한국인 통역전담 홍경미씨 암투병끝 숨져”, 동아닷컴, 2007/01/13. (http://news.donga.com/3//20070113/8395433/1) “[낡은책4] 나의 文酒 40년(남재희,2004)”, 참세상, 2009/01/19. (http://media.jinbo.net/news/view.php?board=news&id=45131) "2013년까지 답십리 촬영소 복원… 옛 명성 되찾을 것", 조선닷컴, 2010/02/01.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2/01/2010020100094.html) [작성: 김성희]
연계 정보
불러오는 중입니다.
등록된 연계 정보가 없습니다.
관련 콘텐츠
불러오는 중입니다.
등록된 관련 콘텐츠가 없습니다.
수집자료를 불러오는 중입니다.
등록된 수집자료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