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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근

Jeon Chang-keun · 全昌根

분야
배우, 감독
데뷔작품
양자강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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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력

1941년
극단 고협(高協) 연출가
1943년
극단 태양(太陽) 단원

영화인 정보조사

1907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국제영화). 1925년 윤백남(尹白南) 프로덕션에 입사해 배우생활을 시작했다고 하나, 곧이어 중국 상하이로 유학을 떠났다(친일인명사전). 무창대학(武昌大學)을 졸업하고 1929년 상하이 대중화백합영화사(大中華百合影片公司) 연기부에 입사했으며, 이어 고성영화사(孤星影片公司), 연화영행공사(聯華影行公司) 등에서 연기자로 활동했다(국제영화). 그중 1931년 고성영화사 제작으로 이경손(李慶孫)이 감독한 <양자강(楊子江)>에서는 주연으로 출연했을 뿐 아니라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각색까지 맡아 화제가 되었다(동아일보a).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귀국하여 이창용(李創用)의 고려영화협회(高麗映畵協會)에서 자신의 시나리오로 연출을 맡게 되었으며, 3년 3개월의 긴 제작기간과 일본, 조선, 만주 일대의 로케이션 촬영을 통해 <복지만리>(1941)를 완성했다(친일인명사전). 이후 해방 전까지 연극 활동에 주력했으며 고려영화협회의 극단 고협(高協)에서 <청춘무성(靑春茂盛)>(1941), <빙화(氷花)>(1942) 등을 연출했고, 극단 태양(太陽)에서 창립작 <그 전야(前夜)>(1943)의 기획을 맡기도 했다(매일신보a, b, c). 해방 후 다시 영화계로 복귀하여 1946년 최인규(崔寅奎)가 감독을 담당한 <자유만세>의 각본을 쓰고 주연을 맡았다. 이듬해부터는 직접 각본과 감독을 맡아 <해방된 내고향>, <민족의 성벽>(1947), <여인>, <그 얼굴>(1948) 등을 만들었고, 이규환 감독의 <민족의 새벽>(1947), 서정규 감독의 <불멸의 밀사>(1947) 등의 시나리오를 썼다. 전쟁 중에는 부산에서 피난생활을 하던 중 경상남도 공보과가 제작한 <낙동강>(1952)의 각본, 감독을 맡았으며, 전후 서울로 복귀한 후 공보처가 제작한 한미친선 전쟁영화 <불사조의 언덕>(1955)을 연출했다. 이후 <단종애사>, <마의 태자>(1956),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1959), <아아 백범 김구선생>(1960) 등 역사적 소재의 영화들을 감독하고 직접 출연했으며, 최초의 한홍합작 영화 <이국정원>(1957), 하와이 교포의 한국 방문담을 담은 <수정탑>(1958), 192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무대로 한 <차이나타운>(1963) 등 이국적인 배경과 소재의 작품들을 만들기도 했다. <차이나타운> 이후로는 1960년대 말까지 주로 배우활동에 전념했으며, 1972년 12월 지병인 고혈압으로 별세했다(경향신문). 영화배우 유계선(劉桂仙)의 남편이며, 두 사람의 딸 전향이(全香二) 역시 배우로 활동한 바 있다(동아일보b).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72년 12월 20일자 7면 동아일보a 1931년 5월 2일자 4면 동아일보b 1962년 5월 24일자 4면 매일신보a 1941년 8월 28일자 4면 매일신보b 1942년 10월 30일자 2면 매일신보c 1943년 8월 29일자 2면 韓國映畵人百人選, 『국제영화』제5권 제2호(1959년 1월 발행)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친일인명사전3』, 민족문제연구소, 2009, 408-410쪽.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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