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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력
- 1972년
- 한진흥업 대표
- 1978년
- 한국도서유통협의회 회장
- 1981년
- 영화제작자협회 회장
- 1982년
- 제27회 아시아영화제 한국대표단 단장
- 1983년
- 문화예술인법회 회장
- 한진출판사대표
- 한국스리랑카협회 회장
- 보광사호국대불조성위원회 위원장
- (저술내용)1982년 알기쉬운 불교사(佛敎史)
- 1993년
- 부처님의 생애
- 1998년
- 우리 어머니처럼 살면 무엇이 두려우랴(자서전)
- 인도와 불교
- 저승에 갔다 온 사람들
영화인 정보조사
한갑진은 초등학교 교사를 하던 중 국제신문 공채 1기에 합격했다. 8년 동안 국제신문 기자로 일하며 정치부장까지 했다. 당시 영화제작자협회 회장이었던 정화세를 만나게 되었고, 정화세가 제작한 영화를 그가 배급하게 되었다. <춘희>(1959), <복도 많지 뭐유>(1959), <과부>(1960) 등의 영화를 부산과 경남지역에 배급했으나, 영화 배급을 통해 이익을 얻지 못하자 1962년 이주영 감독의 <밤에 찾아온 여인>을 제작하면서 제작자의 길로 들어섰다. 신성일과 김지미가 주연한 <이수일과 심순애>(1965)가 히트하면서 영화제작자로서 입지를 굳혔다. 1967년 김형근과 함께 대양영화사를 설립해 79편의 영화를 제작했고, 1972년 한진흥업을 설립해 90편 이상의 영화를 만들었다(한국영화배급사연구). 1978년에는 국내 최초로 태국과 합작하여 <악어의 공포>를 제작하였고, 이 영화의 전 세계 판권을 홍콩의 골든 하베스트사가 당시 최고가인 10만 달러에 사갔다(동아일보). <사랑하는 사람아>(1981)는 1982년 대만에서 개봉해 크게 히트했다(경향신문). 한갑진은 외화수입업자로도 큰 성공을 이루었다. <록키>(1976),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1977)의 수입계약을 위해서 미국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와 콜롬비아에 직접 가기도 했다. 당시 일본을 통해 외화를 수입하는 것이 관행이었는데 한갑진이 국내 최초로 미국과 직접 계약을 했고, 이를 통해 수입가를 낮출 수 있었다(김미현). * 참고문헌 김미현, 『한국영화 배급사 연구』, 영화진흥위원회, 2003, 165~177쪽. 동아일보 1978년 8월 5일자 5면. 경향신문 1982년 6월 11일자 12면. [작성: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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