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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력
- 부산방송국장
- 부산일보 전무
- 영화수출입협회 초대회장
- 영화제작자협회 회장
- 남아진흥(주) 회장
영화인 정보조사
조선방송협회 부산방송국장, 부산일보사 전무 겸 총무국장 등 언론계에서 머물다가,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남화흥업을 설립하여 영화계에 뛰어든다(매일경제b). 이후 남화흥업은 외화수입과 극장 체인을 확충하며 대형 수입/배급사로 자리 잡는 한편, 1950년대 후반부터는 영화 제작에도 나서는데, 그렇게 제작한 <자유결혼>과 같은 경우는, 당시 정부의 국산영화제작과 수출장려 정책과 맞아 떨어져서 외화 수입 쿼터를 얻어내기도 한다(조선일보). 이후로도 외화 수입과 제작은 병행하여 이루어지는데, 14만 명의 관객이 들었던 <요화 배정자>(1966)를 비롯하여 <빙점>(1967), <돌아온 팔도 사나이>(1969) 등의 히트작을 내놓기도 한다. 1971년에는 한국영화 수출입 협회의 협회장 자리를 맡는 등 1980년대까지 한국 영화 배급, 수입에 있어 커다란 위치를 차지한다. 1982년에는 종합촬영소 건립을 목표로 곽정환(합동영화사), 한갑진(한집흥업), 박종찬(화천공사), 이태원(태흥영화사), 정창화(화풍흥업) 등 대형 제작사들과 협력하여 한국영화제작 협동조합을 설립하기도 한다(매일경제a). 그의 아들인 서병기는 모가드 코리아의 대표로 대형외화를 수입하는 한편, 1990년대 초반의 문제작들인 <우묵배미의 사랑>(1990), <베를린 리포트>(1991),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1993) 등을 제작한다. * 참고문헌 매일경제a 1982년 11월 15일 12면 매일경제b 1986년 8월 13일 7면 조선일보 1959년 8월 2일 2면 [작성: 전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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