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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력
- 1946년
- <자유만세>로 데뷔
- 1992년
- 독일 뉘른베르크 국제발명특허전(INEA) 발명대상
- 1993년
- 한국여성발명가협회 창립, 회장 역임
- 1998년
- 한국어머니과학발명협회 초대회장
- (저술내용)『건강도 발명이 지켜왔다』
- 『작은 아이디어 하나로 성공한 여성 발명가들』
- 『역사적 발명, 그 뒷 이야기』
영화인 정보조사
1927년 충청북도 청주 출생으로 본명은 하상남(河相南)이다. 경의여의전과 경기산파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영화 데뷔 전에는 약국과 조산원을 운영하기도 했다(효창쎄리온). 1946년 <자유만세>를 통해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오른손에 큰 부상을 입고 한동안 투병생활을 해야 했으며(한겨레신문), 윤봉춘 감독의 <고향의 노래>(1954), <처녀별>(1956)에 출연하면서 복귀할 수 있었다. <처녀별>이 흥행에 크게 성공하면서 인기배우로 떠오른 그녀는 <노들강변>, <잊을 수 없는 사람들> 등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966년 빙상선수 출신의 남편 이효창과 결혼한 후 함께 ‘세리온’이라는 물질을 발명하고 상용화하면서 발명가, 사업가로 전향했다(한겨레신문). 1992년과 2002년에 독일 국제특허신기술전시대회(IENA)에서 각각 대상을 받았으며, 한국여성발명가협회 초대회장, 한국어머니과학발명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한국여성발명협회, 동아일보). * 참고문헌 동아일보 1998년 7월 30일자 10면. 한겨레신문 2008년 5월 20일자 28면. 한국여성발명협회 홈페이지 http://www.inventor.or.kr/ 효창쎄리온 홈페이지 http://www.hcserion.com/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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