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121
수상내역 0
등록된 수상내역이 없습니다.
주요 경력
- 1938.2 조선영화사 의정부촬영소 입사
- 1943.5 재단법인 조선영화사 전일
- 1945.8 사단법인 대한영화사 전환
- 1954.7 공보처 영화과 현상부 촉탁 임명
- 1962.4 수도영화주식회사 안양촬영소
- 1964.2~66.3 성립현상소 동업경영
- 1966.4 한양녹음실 현상부
- 1968.8 대동현상소 전입
영화인 정보조사
전라남도 광주 출신이다. 조선영화주식회사(朝鮮映畵株式會社, 조영)의 이재명(李載明)과 동향 출신이었다고 하며 조영의 1940년작 <수선화>에서 현상을 담당했다. 이후 사단법인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朝鮮映畵製作株式會社) 체제에서는 현상실에 근무하면서 활동을 이어나간 것으로 보이며, 홍성기 감독과 함께 만주영화협회(滿映)에서도 활동했다고 한다(한국영상자료원b). 해방 후에는 신경균의 <새로운 맹서>, 최인규의 <독립전야>, 이규환의 <갈매기> 등을 비롯하여 이용민의 <제주도 풍토기>, 주한미군 공보원이 제작한 <인민투표> 등의 문화영화에 이르기까지 활발히 활동을 펼쳤다. 전쟁 후에는 국방부 정훈국 영화과에서 한동안 현상실을 책임졌던 것으로 보이며(한국영상자료원a), 1960년대에는 서울영화사에서 활동했다고 한다(한국영상자료원b). 1970년 제8회 영화의 날 기념식에서 유공영화인 문공부장관 표창을 받았다(동아일보). * 참고문헌 동아일보 1970년 10월 28일자 5면 한국영상자료원 편a, 『한국영화를 말한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1』, 이채, 2005, 368쪽. 한국영상자료원 편b, 『한국영화를 말한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3』, 한국영상자료원, 2007, 29, 245-246쪽. [작성: 김한상]
연계 정보
불러오는 중입니다.
등록된 연계 정보가 없습니다.
관련 콘텐츠
불러오는 중입니다.
등록된 관련 콘텐츠가 없습니다.
수집자료를 불러오는 중입니다.
등록된 수집자료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