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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순

Choe Gyu-sun · 崔奎淳

분야
후반작업
데뷔작품
수선화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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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력

1938.2 조선영화사 의정부촬영소 입사
1943.5 재단법인 조선영화사 전일
1945.8 사단법인 대한영화사 전환
1954.7 공보처 영화과 현상부 촉탁 임명
1962.4 수도영화주식회사 안양촬영소

영화인 정보조사

전라남도 광주 출신이다. 조선영화주식회사(朝鮮映畵株式會社, 조영)의 이재명(李載明)과 동향 출신이었다고 하며 조영의 1940년작 <수선화>에서 현상을 담당했다. 이후 사단법인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朝鮮映畵製作株式會社) 체제에서는 현상실에 근무하면서 활동을 이어나간 것으로 보이며, 홍성기 감독과 함께 만주영화협회(滿映)에서도 활동했다고 한다(한국영상자료원b). 해방 후에는 신경균의 <새로운 맹서>, 최인규의 <독립전야>, 이규환의 <갈매기> 등을 비롯하여 이용민의 <제주도 풍토기>, 주한미군 공보원이 제작한 <인민투표> 등의 문화영화에 이르기까지 활발히 활동을 펼쳤다. 전쟁 후에는 국방부 정훈국 영화과에서 한동안 현상실을 책임졌던 것으로 보이며(한국영상자료원a), 1960년대에는 서울영화사에서 활동했다고 한다(한국영상자료원b). 1970년 제8회 영화의 날 기념식에서 유공영화인 문공부장관 표창을 받았다(동아일보). * 참고문헌 동아일보 1970년 10월 28일자 5면 한국영상자료원 편a, 『한국영화를 말한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1』, 이채, 2005, 368쪽. 한국영상자료원 편b, 『한국영화를 말한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3』, 한국영상자료원, 2007, 29, 245-246쪽.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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