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121
수상내역 2
| 영화제명 | 개최연도 | 수상부문 | 작품명 |
|---|---|---|---|
| 제7회 백마상영화제 (중도일보영화제) | 1972 | 감독상 | 일본대부 |
| 제9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72 | 감독상 | 소장수 |
주요 경력
- 1979년
- (주)동협 영화사 사장
영화인 정보조사
김효천은 한국해양대학 출신으로 4년간 상선에서 마도로스 생활을 했다. 영화를 좋아 했던 그는 이후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계에 입문하여 <공포의 8시간>(1962), <전쟁과 노인>(1962), <천동>(1963) 등 50여 편의 시나리오를 썼다(한국영화감독사전, 주간한국). 통속 멜로드라마 <그래도 못잊어>(1967년)를 연출하면서 감독으로 데뷔했고, <슬픔은 파도를 넘어>(1968), <팔도기생>(1968), <첫날밤 갑자기>(1969) 등 통속적 멜로드라마를 몇 편 더 연출한 이후에는 주로 활극을 연출했다(한국영화감독사전). 1982년까지 연출한 작품은 44편인데, 이 중 <목가>(1967) 등 4편을 제외한 40편이 액션영화일 정도로 액션영화에 정통하였다. <팔도사나이>(1968)는 13만 8천명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명동’ 시리즈, ‘협객 김두한’ 시리즈도 흥행했다(동아일보b). <김두한>(1974)을 감독한 이후 영화사를 차려 제작을 했으나 여의치 않아 동남아 진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성공을 거두지 못해 이후에는 홍콩에 거주하며 요식업을 하기도 했다. 1979년 귀국하여 영화사 동협(東協)을 차리고 <오사카의 외로운 별>(1980)을 제작·연출했다(동아일보a, 주간한국). <오사카의 외로운 별>은 50여명의 스태프와 배우가 2개월간 일본에서 촬영한 작품으로(매일경제), 영화 속 군중장면에서는 2천명의 일본인 엑스트라를 동원하기도했다(동아일보a). 김효천은 동협영화사의 사장으로 있으면서 수십 편의 외화를 수입하고 110여 편의 작품을 제작했다. 이후 미국으로 이주하여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한국 음식점을 경영했다(한국영화감독사전). * 참고문헌 《주간한국》, 한국일보사, 1981년 9월 6일 발행, 116쪽. 동아일보a 1980년 6월 28일자 5면. 동아일보b 1982년 8월 4일자 12면. 매일경제 1980년 5월 17일자 8면. 한국영화감독사전 (http://www.kmdb.or.kr/actor/mm_basic.asp?person_id=00007349&keyword=김효천) * 《주간한국》은 한국영화 디지털정보서비스(KMDS) 검색. [작성: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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