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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원

Gang Jeong-won · 姜鼎遠

분야
제작/기획
데뷔작품
개화당이문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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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전라도 출신 강정원은 유신키네마라는 영화사를 설립하고, 1884년 김옥균 등이 일으킨 갑신정변을 영화화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당시 연속된 영화의 실패로 실추된 명성을 회복하고자 했던 나운규와 손을 잡고 <개화당이문(開化黨異聞)>(1932)을 제작하였다. 나운규가 <개화당이문>의 각본과 감독을 맡았고, 영화는 6월초에 개봉하였다(최창호; 삼천리; 동아일보a). 계속해서 유신키네마는 제2회 작품으로 이규환 감독의 <임자 없는 나룻배>를 1932년 8월부터 준비하였다. 이 작품은 이규환의 훌륭한 연출로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동아일보b; 동아일보c). 그리고 <임자 없는 나룻배>는 당시 조선에서 보기 드문 종류의 소송을 불러 일으켰다. 강정원은 1933년 1월에 와케지마 슈지로(分島周次郞)와 이명우(李明雨)를 상대로 <임자 없는 나룻배> 영화필림의 흥행금지가처분 신청과 영화사진인도청구 소송을 경성지방법원에 제기하였다. 소송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32년 9월 강정원이 <임자 없는 나룻배>의 제작을 위해 분도주차랑과 교섭하여 그가 경영하는 경성사진소의 이명우를 고용하고, 촬영에 필요한 촬영 기계를 대여하는데 300원을 지불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영화 촬영이 끝나면 각 5천척의 필름을 두 벌 만들어서 양도받기로 하였는데, 분도주차랑과 이명우는 그 중 한 벌을 양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양도하지 않은 필름으로 진주와 목포 등지에서 상영계획을 세우자 강정원이 이들을 법원에 고소한 것이었다. 이런 종류의 분쟁이 흔하지 않았던 관계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동아일보d; 동아일보e).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32년 5월 27일 5면. 동아일보b 1932년 8월 13일 5면. 동아일보c 1932년 9월 14일 5면. 동아일보d 1933년 1월 27일 2면. 동아일보e 1933년 6월 20일 2면. 최창호 외, 『라운규와 수난기 영화』, 한국문화사(영인), 2001. 「朝鮮文化 及 産業博覽會, 映畵篇」,『삼천리』제12권 제5호, 1940년 5월호.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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