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200
수상내역 2
| 영화제명 | 개최연도 | 수상부문 | 작품명 |
|---|---|---|---|
| 제3회 부일영화상 | 1960 | 여우주연상 | 10대의 반항 |
| 제4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66 | 여우조연상 | 나운규 일생 |
주요 경력
- 1969년
- 미국으로 이민
영화인 정보조사
1929년 2월 4일 경남 마산에서 출생하였다. 8세 때 <임자없는 자식들>이라는 연극에서 첫 얼굴을 알렸고 1939년 극단 <청춘좌>에서 활동하면서 본격적인 배우 수업을 받았다(여성영화인사전). 영화 데뷔작은 이규환 감독의 <갈매기>(1948)로, 이 작품에서 만난 제작자 이철혁과 결혼했다. 그녀의 명실공한 대표작은 1955년 이규환 감독작 <춘향전>과 1956년 이병일 감독작 <시집가는 날>이다. <춘향전>에서는 ‘성춘향’역을 맡았고 특유의 고전적 매력으로 관객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이 작품은 1955년 국도극장에서 개봉하여 서울에서 30만 명의 관객 동원을 기록하며 “근자에 드물게 보는 대성황”의 작품으로 기록되었다(동아일보a, c). 오영진의 희곡을 영화화한 <시집가는 날>에서는 맹진사댁 몸종 ‘입분’ 역을 맡아 순수한 매력을 선보였다. 이 작품 역시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으며, 1957년 아시아영화제 특별 희극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이 두 작품에서 공히 선보인 동양적이고 고전적인 마스크와 분위기로 인기를 얻었고. 이후 안현철의 <양산도>(1961), 강대진의 <마부>(1961), 유현목의 <성웅 이순신>(1962), 김수용의 <혈맥>(1963), 신상옥의 <로맨스 그레이>(1963) 등 1950년대 중후반과 1960년대 후반에 걸쳐서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이철혁과 사별 후 1969년 재미교포와 재혼하여 미국으로 건너간 조미령은 1981년 조문진작 <두 여자>(1981)의 출연을 위해 일시 귀국하기도 하였다(동아일보b). 귀국 소감을 밝히며 그녀는 “14년 전 미국으로 떠날 때도 은퇴선언은 하지 않았다”며 “국제전화로 출연제의를 받았을 때 마구 떨렸다”며 연기에 대한 변하지 않는 열정을 피력하기도 했다(경향신문).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81년 4월 15일 12면 동아일보a 1955년 1월 12일 4면 동아일보b 1981년 3월 20일 12면 동아일보c 1999년 3월 8일 13면 주진숙 외, 『여성영화인 사전』, 소도, 2001.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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