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3
원작 (1개)
배우 (2개)
수상내역 0
등록된 수상내역이 없습니다.
주요 경력
- 1930년
- 조선연극사 전속작가
- 1932년
- 포리돌레코드 조선지점 설립 관여 후 문예부장 역임
- 1940년
- 평안북도 강계군에서 연극 <남매> 공연 중 무대에서 쓰러져 요절
영화인 정보조사
왕평은 현철과 이구영이 주도하는 조선배우학교 1기로 연기 수업을 받았다(대중예술인 사전). 활동은 조선연극사에서 각본을 쓰는 일로 시작하였다. 1920년대에 발표한 <경성야화>, <홍길동> 등이 그 때의 자취들이다. 1930년대에는 조선연극사의 무대감독으로 활약하면서 연기도 하였다. 특히, 이애리수가 불러 큰 인기를 끈 가요 <황성옛터>의 작사가이기도 하다(황문평). 1936년 성봉영화원 제1회 작품으로 제작을 시작하였지만, 1938년에야 개봉한 <나그네>에서 고기잡이 일을 하는 주인공 봉룡 역으로 출연하여, “본래 조선 남배우 가운데서 찾아보지 못하던 새로운 타입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조선일보a ; 조선일보b). 1938년 <군용열차>에서 김점용 역으로 출연하였으며, 1939년에는 동아영화제작소 작품으로 박영희 원작, 안석영 연출, 이명우가 촬영한 <지원병>에 출연하였다(동아일보a; 동아일보b). 1940년 강계에서 연극 <남매>를 공연하던 중 무대 위에서 뇌일혈로 사망했다(대중예술인 사전).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38년 3월 18일 5면. 동아일보b 1939년 10월 26일 5면. 조선일보a 1936년 11월 29일 석간 6면. 조선일보b 1938년 1월 22일 석간 6면. 황문평, <<인물로 본 연예사>>, 선, 1998. <<식민지 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소도, 2006.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연계 정보
불러오는 중입니다.
등록된 연계 정보가 없습니다.
관련 콘텐츠
불러오는 중입니다.
등록된 관련 콘텐츠가 없습니다.
수집자료를 불러오는 중입니다.
등록된 수집자료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