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61
수상내역 1
| 영화제명 | 개최연도 | 수상부문 | 작품명 |
|---|---|---|---|
| 제26회 대종상 영화제 | 1987 | 공로상 | - |
주요 경력
- 한국영화인협회 연기분과위 부위원장
영화인 정보조사
1929년 강원도 화천에서 출생하여 배화고등여학교(排貨高女)를 졸업했다. 배화고녀를 졸업하던 1942년 그는 최인규감독과 배우 전택이가 공동 제작하는 <마의 산>에 출연할 여주인공 모집에 당선되었지만, 이 작품의 제작이 중단되자 약초가극단(若草歌劇團)에서 노래하는 배우로 연기생활을 시작했다(여성영화인사전). 1950년 <놀부와 흥부>(이경선)에 출연하며 영화배우로 데뷔했다(동아일보b). 1955년 김성민 감독의 <막난이비사>에서 막난이 ‘먹(전택이 분)’을 사랑하는 ‘달’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이 영화로 그녀는 1956년 금룡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동아일보a). 여기서 노경희의 연기력은 “최고의 수준에 달한 것으로 절대의 찬사를 보내어 아낌없는 것”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경향신문a). 1955년 이강천 감독의 <피아골>은 노경희가 빨치산 여성대원으로 분해 적극적인 캐릭터를 선보이면서 개성적 연기를 부각시킨 작품이었다. 훗날 그녀도 회고에서 “피아골에서 열연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라 밝히기도 했다(경향신문b). 그녀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저돌적인 역할을 주로 맡아 당대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규환 작 <춘향전>(1955)의 당돌하고 입심 좋은 ‘향단,’ 교수 부인 ‘오선영’을 무도회장으로 이끄는 <자유부인>(1956)의 친구, 유부남 소설가에게 열렬하게 구애하는 <실락원의 별>(1957)의 ‘여대생’ 역할 등을 맡아, 1950년대 중후반 ‘연애무드’로 충만한 자유로운 풍속과 사회로 나온 당찬 여성상을 대변하는 연기를 선보였다. 1969년 <어느 하늘 아래서>를 마지막으로 20년간 휴식기를 보내다 1989년 <빨간 여배우>(신승수)로 스크린에 복귀하기도 한 그녀는, 1995년 67세를 일기로 생을 거뒀다(동아일보b).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55년 11월 27일자 4면 경향신문b 1986년 5월 14일자 7면 동아일보a 1956년 1월 3일자 4면 동아일보b 1995년 7월 19일자 29면 주진숙 외, 『여성영화인 사전』, 소도, 2001. [작성: 김한상]
연계 정보
불러오는 중입니다.
등록된 연계 정보가 없습니다.
관련 콘텐츠
불러오는 중입니다.
등록된 관련 콘텐츠가 없습니다.
수집자료를 불러오는 중입니다.
등록된 수집자료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