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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우전

Won Woo-jeon · 元雨田

분야
미술
데뷔작품
심청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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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력

1923년
극단 토월회에 참여하여 이승만(李承萬)과 함께 새로운 무대미술을 시도
1926년
극작가 진우촌(秦雨村), 함세덕(咸世德), 연기자 정암(鄭岩), 언론인 고일(高逸), 송수안(宋壽安) 등과 함께 극단 '칠면구락부(七面俱樂部)'를 결성
1930년
신흥극장(新興劇場) 창립단원으로 참여
1932년
극단 문외극단 미술 담당
1933년
극단 황금좌(黃金座) 미술 담당

영화인 정보조사

백조 동인으로 토월회와 인연을 맺었다. 토월회의 2회 공연부터 무대미술을 담당하였다(박승희; 김남석). 토월회의 인천공연에 자극받아 1926년 인천에서 창단된 연극 단체 칠면구락부(七面俱樂部)에서도 무대장치를 맡기도 하였다(김남석). 1930년에는 조선연극사에 가담하였다. 같은 해 신흥극단(新興劇團)이 홍해성 연출로 올린 <목란등기>의 무대장치를 담당하였다(동아일보a). 1932년에는 신불출을 중심으로 탄생한 문외극단(門外劇團)에서 활동하였다(매일신보). 1936년 6월에 조선극장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는 조선극장 선전부장으로 화재에 관해 경찰의 조사를 받기도 하였다(조선중앙일보). 이외에도 여러 극장에서 활동하였는데, 원우전의 재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무대로는 동양극장에서 올린 <명기 황진이> 공연에서 물 흐르는 구룡폭포를 무대로 만든 것을 들 수 있다. 40년대에는 극단 아랑에서 활동하며, <김옥균>과 <동학당> 등의 무대를 담당하였다(김남석). 1970년 10월 17일 향년 76세로 사망하였다(동아일보b).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30년 11월 5일자 5면. 동아일보b 1970년 10월 21일자 5면. 매일신보 1932년 12월 14일자 3면. 조선중앙일보 1936년 6월 12일자 2면. 박승희, 「토월회이야기(1)」, 『사상계』121호, 1963년 5월호, 328~343쪽. 김남석, 「최초의 무대미술가 원우전」, 『인천학연구』7호, 2007, 211~240쪽.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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