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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력
- 1933년
- 일본 조치대학 신문연구실 연구원
- 1935년
-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이민열차>로 가작 입선하여 등단
- 1939년
- 조선영화인협회 서기
- 조선영화건설본부 서기장
- 조선영화동맹 결성 참가
- 1946년
- <조선영화사> 발간
- 미 공보원 영화고문
- 1950년 7월 15일
- 납북된 것으로 추정
- (저술내용)1946년 『조선영화사』 발간
영화인 정보조사
1915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나 일본 죠치대학(上智大學)에서 공부했다. 1920년대 말 신간회에서 활동했으며 중외일보 주을지국 기자를 지내기도 했다. 1935년 김정혁(金正革)이라는 필명으로 단편 소설 부문 가작에 뽑혔다. 1938년 박기채 감독작 <무정>의 윤색을 담당했으며, 고려영화협회(高麗映畵協會)에 입사한 뒤 최인규 감독의 <집없는 천사>(1940)의 기획을 맡았다. 1940년 조선영화령 공포 이후 「영화의 정신」, 「조선영화기업론」, 「제작정신과 조선영화」, 「영화령의 실시와 조선 영화계의 장래」(1940), 「조선영화진흥책의 목표」(1941) 등 일본의 선전 정책을 지지하는 다수의 영화평론 및 시평을 냈다. 1941년 임화와 함께 조선영화문화연구소(朝鮮映畵文化硏究所)에 참여했다. 해방 후에는 조선영화건설본부(朝鮮映畵建設本部)의 서기장을 맡았다(친일인명사전). 1946년 최인규 감독의 <자유만세>의 윤색을 맡았고(경향신문), 박기채의 <밤의 태양>(1948), 노필의 <안창남 비행사>(1949)의 시나리오를 썼다. 1946년에는 『조선영화사』를 발간하고 미국공보원 영화고문을 지내며 영화계 재건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1950년 7월 15일 한국전쟁 때 납북된 것으로 추정된다.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46년 10월 8일자 4면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친일인명사전1』, 민족문제연구소, 2009.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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