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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북양 대표 이미지

윤북양

Yun Buk-yang · 尹北洋

분야
배우
데뷔작품
어화(漁火)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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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력

1933년
극단 신건설(新建設) 단원
1934년
동경 고려극단(高麗劇團) 단원
1935년
동경 조선예술좌(朝鮮藝術座) 좌원
1936년
조선연극협회(朝鮮演劇協會) 단원

영화인 정보조사

일제강점기의 영화배우. 본명은 윤해덕(尹海德)이며 생몰정보는 미상이다. 1933년 4월 프롤레타리아 연극 극단 신건설(新建設)의 멤버로 오철영(吳鐵榮), 최영대(崔榮臺) 등과 함께 동경에 파견되었다고 한다. 1934년 출범한 재일본 조선인 프로연극 단체 고려극단(高麗劇團)에서 사무국원 겸 연기반원으로 활동했다(박영정). 1935년 고려극단이 해산하고 그 일부가 ‘진보적 민족연극’을 목표로 창립한 조선예술좌(朝鮮藝術座)에서 좌원으로 활동했으며(조선중앙일보, 동아일보a, 박영정), 1936년 나머지 세력인 동경신연극연구회와 통합하여 통합 조선예술좌가 창설되면서 위원 겸 서무부장으로 발탁되었다. 이후 조선예술좌의 멤버 일부가 국내에서의 신극운동을 목표로 귀국하게 되는데, 이때 이화삼(李化三), 김일영(金一影), 박학(朴學) 등과 함께 돌아왔다(박영정). 이들은 같은 해 8월 조선연극협회(朝鮮演劇協會) 창립총회를 열고 활동을 시작했으며, 창립공연으로 부민관에서 몰리에르의 <수전노>를 상연했다(매일신보a, 박영정). 윤북양은 1회 공연 <수전노>, 2회 <섬잇는 바다 풍경>, <소야(騷夜)> 등에서 배우로 무대에 올랐다(박영정, 동아일보b, 매일신보b). 영화 데뷔는 1938년 안철영(安哲永) 감독이 극광영화(極光映畵)의 제1회 작품으로 연출한 <어화>에 어부 춘삼 역으로 출연하면서였다(동아일보c). 이후의 행적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35년 6월 5일자 3면. 동아일보b 1937년 6월 8일자 8면. 동아일보c 1938년 3월 31일자 4면. 매일신보a 1936년 8월 25일자 3면. 매일신보b 1937년 6월 8일자 8면. 조선중앙일보 1935년 6월 3일자 4면. 박영정, 『한국 근대연극과 재일본 조선인 연극운동』, 연극과인간, 2007, 86-170쪽.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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