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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력
- 1923년
- 민중극단 단원으로 한국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에 참여
- 1931년
- 취성좌 재건 당시 단원
- 1935년
- 유락좌 책임자
- 1936년
- 동양극장 직영 극단 동극좌 단원
영화인 정보조사
송해천은 1923년 윤백남이 자신의 극단원들을 이끌고 제작한 <월하의 맹세>에 출연하였다. 하지만 송해천은 영화배우라기보다는 연극배우였기 때문에 이후 식민지 시기 영화에 출연한 기록이 없다. 연극인으로서 송해천은 1931년 이원재, 이종철, 신불출 등과 함께 취성좌 부활을 도모하였다(동아일보a). 그리고 이후에는 극단 유락좌(有樂座)를 이끌고 평양을 중심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동아일보b). 1936년에는 동양극장 직속 극단인 동극좌(東劇座)에 소속되어 공연을 하기도 하는 등 연극활동에 종사하였다(동아일보c). 해방 이후 활동이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지만, <처녀별>(1956), <시집가는 날>(1957), <마음의 진주>(1958) 등의 영화에 출연하였다(경향신문a; 경향신문b; 경향신문c).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31년 7월 29일 4면. 동아일보b 1935년 1월 1일 41면. 동아일보c 1936년 2월 15일 6면. 경향신문a 1956년 2월 20일 4면. 경향신문b 1957년 2월 11일 4면. 경향신문c 1958년 3월 4일 2면.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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