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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1934년 안종화가 감독한 금강키네마의 <청춘의 십자로>로 영화계에 데뷔하였다. 한량끼 많은 부잣집 아들 장개철 역할이었다. <청춘의 십자로>의 제작자는 박창수(朴昌洙)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박윤의 본명이었다. 배우의 꿈을 가지고 있었던 박윤은 서울에서 배재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신인 배우 모집에 응했으나 실패하였다. 그는 결국 사재를 털어 <청춘의 십자로>를 제작하고 자신이 배우로 출연하였던 것이다(안종화). 이규환은 <청춘의 십자로>에서 보여준 박윤의 연기에 대해 동작의 구속을 받지 않으며, 표정의 태연함과 카메라를 겁내지 않는 자세 등이 신인답지 않다고 평하였다. 그러면서 어떤 감독이든지 한 번 살려보고 싶은 타고난 재능을 가진 배우라며 <청춘의 십자로>를 통해 박윤을 얻었다고 극찬하였다. 박윤은 전라남도 남원 출신으로, 서울에서 배제고등보통학교를 마치자 신인 배우 모집에 응모했다. 그러나 체격은 축구선수라서 썩 좋은데 얼굴이 말상(馬相)이라는 이유로 탈락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로부터 4년 후 사재를 털어 제작에 나서면서 <청춘의 십자로>에 출연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후 안종화 감독의 <인생항로>(1937)에 출연한 후 영화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조선일보a; 조선일보b). * 참고문헌 조선일보a 1934년 9월 21일 석간 3면. 조선일보b 1934년 10월 3일 석간 3면. 안종화, <<한국영화측면비사>>, 춘추각, 1962년, 191쪽.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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