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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력
- 1937년
- 조선영화주식회사 사무취체역(事務取締役)
- 1938년
- 조선영화주식회사 전무취체역(專務取締役), 의정부촬영소 소장
영화인 정보조사
1911년경에 태어났다(매일신보b). 1937년 최남주(崔南周)와 함께 조선영화주식회사(朝鮮映畵株式會社, 조영)를 창립했다(매일신보a). 조영의 제1회 작품은 춘원 이광수 원작의 <무정>으로, 오영석은 이재명(李載命)과 함께 제작 과정을 총책임지는 역할을 맡았다(동아일보a). 1938년 말에 시행된 부서정돈에서 오영석은 기존의 사무취체역(事務取締役)에서 전무취체역(專務取締役)으로 승진함과 동시에 새로 설립된 의정부촬영소 소장을 겸임하게 되었다(동아일보b). 의정부촬영소는 초기 자본금 약 10만원으로 설립되었으며 직원 30명가량이 근무하던 곳으로 녹음실과 발성영화 전용 세트, 변전실, 영사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삼천리). 조영의 제2회 작품이었던 <새출발>의 경우 이규환(李揆煥)이 감독을 맡았는데, 당시 조영의 제작부장 이재명이 이규환과의 작업을 거부하는 바람에 오영석이 조영 밖에서 단독 제작한 작품이라고 한다(한국예술연구소). <새출발>은 흥행 성적이 좋았다고 평가되지만(이영일), 그 후 오영석은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941년 매일신보는 오영석을 최남주와 함께 조선영화주식회사의 양대 주역이라고 소개하면서, 그가 “발을 멈추고” 있는 것이 조영과 조선영화계가 부진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평가하고 있다(매일신보b). 그러나 그는 다시 활동을 재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해방 이후의 행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38년 3월 19일자 5면 동아일보b 1938년 12월 23일자 5면 매일신보a 1937년 7월 23일자 6면 매일신보b 1941년 2월 7일자 4면 議政府스타듸오, 映畵의 平和스러운 마을, 『삼천리』 제11권 제4호(1939년 4월 발행) 나는 조선감독, 일본영화는 못 만든다 - 이규환 감독편 下, 『씨네21』 제308호(2001년 6월 발행) 이영일, 『한국영화전사』, 소도, 2004, 185-187쪽. 한국예술연구소 편, 『이영일의 한국영화사를 위한 증언록 ? 성동호, 이규환, 최금동 편』, 소도, 2003, 182-193쪽.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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