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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

Lee So-yeon · 李素然

분야
배우
데뷔작품
봉황의 면류관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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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어려서부터 연극과 활동사진을 좋아하다가 친우의 소개로 이세기를 중심으로 조직된 조선예술협회에 가입하였지만, 곧 조선예술협회는 해체되었다. 이소연은 그림 공부를 하기 위해 동경으로 건너갔는데, 관동대지진으로 공부를 중단하고 돌아왔다. 조선에 돌아온 후, 토월회에 들어가서 연극활동에 전념하였다(청춘일기). 이소연은 영화배우로도 활동하였다. 1926년 이경손이 감독한 <봉황의 면류관>에 출연하였다(경향신문). 이즈음 대구에서 창립된 아세아키네마에의 전속배우가 되었으며, 고려영화제작소의 혁신 제1회 작품인 <혈마(재활)>(1928)에 안금향과 함께 주연을 맡았다(동아일보a; 동아일보b). 이외에도 1934년 김소봉이 감독한 <전과자>(1934)에 출연하기도 하였다(조선중앙일보b). 이소연은 영화배우보다는 연극활동에 더욱 적극적이었다. 무대예술을 연구하기 위한 신극단체 화조회(火鳥會)를 조직하여 제1회 공연을 올렸지만, 곧바로 해산하기도 하였다(동아일보c; 동아일보d). 이후에도 라디오 드라마와 연극활동을 계속하였다. 참고로 이소연의 여동생은 조선 최초의 여성비행사인 이정희(李貞喜)였다(조선중앙일보a).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27년 10월 22일 3면 동아일보b 1927년 10월 25일 3면 동아일보c 1928년 5월 1일 3면 동아일보d 1931년 7월 10일 4면 조선중앙일보a 1933년 8월 8일 2면 조선중앙일보b 1934년 12월 17일 4면 경향신문 1961년 3월 8일 4면 이소연,「청춘일기-연극광시대」,『별건곤』제21호, 1929년 6월호, 35~36쪽.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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