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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1921년 함경북도 주을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박억별(朴憶別), 다른 예명으로 박정림(朴貞林)이 있다. 원산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를 다녔다고 한다(식민지시대대중예술인사전). 1937년 주을온천에 공연 온 오케연주단에서 박시춘을 알게 된 후 가수가 되기 위해 서울로 갔다고 하며, 서울에서 음악학원을 다니다가 태평레코드사에 발탁되어 “청춘극장,” “고향의 녹야,” “필둥말둥,” “봄신문,” “서커스 걸” 등을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했다(영남일보, 반야월). 이를 통해 얻은 인기를 기반으로 콜럼비아레코드사로 이적했으며, 대표곡인 “오빠는 풍각쟁이”를 비롯하여 “선창에 울러왔다,” “찻집 아가씨” 등의 히트곡을 냈다(반야월, 식민지시대대중예술인사전). 이후 오케레코드사에서 “코스모스 탄식”을 취입하기도 했으며(영남일보), 1943년 사단법인 조선영화주식회사가 제작한 영화 <조선해협>에서 주제가를 불렀다. 1946년 결혼하여 출산한 직후 악극단의 순회공연 무대에 올랐고, 이에 과로로 산욕열에 걸려 사망했다고 한다(영남일보). * 참고문헌 영남일보 2007년 10월 18일자 21면. 반야월, 『그노래 그사연 ? 가요야화』, 세광음악출판사, 1987, 67-69쪽. 강옥희 외, 『식민지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소도, 2006.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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