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인'의 형성과 근대 영화산업 전개의 상호 연관성 연구: <경성일보>와 <매일신보>에 나타난 영화 담론을 중심으로['Gyeongseongin(京城人)'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the mutual relation of the modern film industry: Based on the discussion of film in the 'Gyeongsang-ilbo(京城日報)' and the 'Maeil-sinbo(每日申報)']
Management No. TKC03901
- Physical/Digital
- 아날로그
- Media Type
- 논문
- Subject
- 연구기술
Basic Information
- Title
- '경성인'의 형성과 근대 영화산업 전개의 상호 연관성 연구: <경성일보>와 <매일신보>에 나타난 영화 담론을 중심으로['Gyeongseongin(京城人)'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the mutual relation of the modern film industry: Based on the discussion of film in the 'Gyeongsang-ilbo(京城日報)' and the 'Maeil-sinbo(每日申報)']
- Subtitle
- -
- Parallel Title
- -
- Country
- 국내
- Production Date
- 2012-**-**
- Language
- 한국어
- Size (mm)
- -
- Pages
- 148
- ISBN/ISSN
- -
- Edition
- -
- Master Files
- -
- Producer
- Hoshino Yuko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 석사 논문 저자)
- Description
- (논문요약)[국문초록]영화가 조선에 들어오고 산업적으로 발흥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영화의 예술성만이 아니라 산업성 그리고 식민지 상황이라는 역사적 특수성이다. 한국영화의 시발점은 일제의 정치적, 경제적, 산업적 지배시기에 놓여 있었기에 조선의 영화는 조선적인 것과 아닌 것의 구분이 명료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연구에서는 일본영화계와 조선영화의 긴밀한 영향 관계를 고려하기보다는 조선영화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어 왔다. 본고에서는 영화사의 객관적 서술이라는 관점에서 식민지 시기 조선의 영화가 어떻게 발흥하게 되었는지 당시 신문 영화 광고 통계 분석을 바탕으로 연구하였다. 영화가 새로운 미디어차원으로 인식되었던 활동사진시기부터 ‘영화’의 장르적 지위에 대한 정의는 아직 ‘탐색 중’에 있었고, 영상물이 일종의 상품으로 인식되면서 영화의 ‘영상성’은 상업성을 띠며 장르적 혼융 현상이 일어났다. 영화 도입 초기의 조선의 대중과 지식인은 영화의 ‘미디어성’에 경도되어 영화를 독립적 장르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다양한 비평담론들을 쏟아내게 된다. 이러한 장르적 변이와 독립 장르로서의 위치 탐색 과정에서 대중성, 오락성, 문예성, 상업성 등 다양한 관점이 수립되며 영화가 산업적, 문예적 위치를 정립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조선인과 일본인 그리고 재경일본인들의 역학 관계가 산업적, 문예적, 비평적 차원에서 다기하게 나타난다. 이런 점에서 식민지 시기의 영화사는 이 삼자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씌어져야 마땅하다. 본고는 근대 신문·잡지의 영화 담론과 『경성일보』와 『매일신보』에 개재된 영화광고의 구체적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근대초기 영화산업의 장르, 시장, 관객 층위의 문제들을 새롭게 검토하였다. 한국의 초기영화사를 민족적 경계 의식을 탈피하여 지역 영화 산업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했으며 ‘경성인’이 영화의 산업적·문예적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고찰하였다. 2장에서는 ‘경성’이라는 지역이 민족적 경계를 허물고 산업적 통합이 시도되는 곳이면서 동시에 ‘경성인’이라는 자의식이 형성되는 곳이었던 점에 주목하여 ‘경성인’이라는 추상적 집단을 설정하였다. 경성이 정치적, 경제적 자율성을 표방하면서 ‘경성인’은 근대적 도시민으로, 타집단과 변별되는 공동체의 일원임을 지표하는 기표로 작용했다. 이러한 민족적 경계의 지역화는 ‘민족성의 상업화 시도’로 이어지는데 이는 각종 신 미디어들의 융합과정에서 콘텐츠보다는 미디어 그 자체에 더 주목했던 결과였다. 영화 산업이 발생하던 초기, 영화에 대한 장르적 인식은 지식인이나 대중 모두 전무했었다. 영화 산업의 발달로 점차 영화에 대한 문예적 접근을 시도하게 된 조선의 문인들은 영화 제작에도 관여하게 되지만 대중의 영화 취향은 문인들의 영화 취향과는 괴리되는 상업적 성격을 띠었다. 이는 다원적 생산자와 일원적 소비자의 연결이 소비자의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데에 비해, 선택되지 못한 상품 생산자는 시장에서 도태되는 시장의 원리 때문이다. 일본영화사들의 전략적 조선 진출은 이런 영화 취향의 이원화를 더 부추겼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성’은 일본의 영화 시장과는 다른 독자적 시장으로 그 입지를 굳혀가게 되는데 이는 경성을 중심으로 한 ‘도시민 관객’의 형성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논문에서는 총독부 인구통계 자료를 분석하여 조선의 영화 관객 인구에 대해 추정하였다. 이에 따르면 도시민 관객은 경성인 개념에 가장 부합하는 부류로서 주요관객층(9%), 잠재적 관객층(15%), 소외관객층(76%)로 구분할 수 있다. 주요관객층으로서의 경성인은 도시민으로서 새로운 문예에 관심이 컸는데, 이들의 취향은 민족과 계층에 따라 다원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다수를 차지했던 대중은 문예성보다는 오락성에 경도되어 있었고, 이런 상업적 성격에 대해 지식인들은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영화 산업은 대중성을 띠었다. 20년대 후반에 들어 지식인들의 영화관도 대중적 취향을 보이기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시대적 제약에 따른 일시적인 경향(트렌드)였지 그들의 근본적인 취향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한편 대중들의 오락적 취향에 영향을 주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영화사의 광고 경쟁이었다. 대중 매체의 각종 서사물들이 영화로 각색되었던 것도 영화 산업의 상업성의 일단이었다. 제3장에서는 기존 서사물들이 시각화, 영상화되어 가는 양상을 살피고 영화 장르가 독립 장르로 인식되기까지 기존 문예와 어떻게 융합되어 가며 영화 관객층을 형성시킬 수 있었는지 논하였다. 대중들의 영상성 지향은 비영상문예의 영상화 시도로 연결되었고 이는 ‘영상물’로서의 영화에서 ‘영상 서사물’로서의 영화로의 변화를 동반했다. 특히<怒?の月>처럼 일본인 작가가 경성에서 창작하여 『경성일보』에 처음 발표한 작품은 가히 경성인에 의한, 경성인을 위한 공연이라고 평가할만하다. ‘영화극’이라는 표현처럼 영화는 독립적 영상물을 지향했고 이런 장르적 인식은 ‘영화’ 문예 자체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관찰과 모색으로 이어져 ‘장르로서의 영화에 대한 인식’으로 전환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인식은 문인들의 문예적 입장보다는 대중 문예의 상업적 판단이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 1925년 이후, 영화 담론은 생산자 · 수용자라는 산업적 측면과 조선·일본·경성이라는 지역적 측면을 주목했다. 조선인 수용자의 비평담론( 『매일신보』 독자투고란)은 미국영화에 영향을 받은 ‘오락성’과 조선인의 ‘전통적 정서’ 등이 강조되었고, 일본인 수용자의 비평담론( 『경성일보』 독자투고란)은 유럽영화에 영향을 받은 ‘서구적 문예성’과 일본의 ‘전통 문예성’이 함께 강조되었다. 한편 경성인의 생산자 비평담론(신문·잡지의 기사와 광고)은 제작과 비평론의 측면에서 ‘시대정신’, ‘문예성’, ‘상업성’, ‘대중성’ 등의 키워드가 사용되었다. 수용자의 주관적 인상비평과 생산자의 문예적 비평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경성은 점차 독립적 영화 시장과 경성인의 영화 문화를 형성해감으로써 근대 영화 장르의 형성과 발전에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본 논문은 초창기 영화산업의 형성기에 일본의 영화산업이 조선의 영화산업에 미친 영향과 조선에서의 영화 장르가 어떻게 정착되고 생산되어 갔는지를 『경성일보』, 『매일신보』의 구체적인 통계 분석을 바탕으로 고찰하였다. 조선이라는 새로운 영화 시장에서 대중들의 영화 담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무엇을 논했었는지와 그들의 담론이 흥행했던 영화 작품의 실상과 어떻게 관련되지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못한 것은 이 논문의 한계이며 자료의 한계이기도 하다. (영문초록)[영문초록]The introduction and commercial rise of films in Joseon Korea was influenced not only by artistic vision, but also commercial forces and the peculiar historical circumstances of the colonial situation. However, because the beginnings of Korean cinema take place during a time of Japanese political, economic and commercial dominance, the line separating the Korean from the non-Korean is not obviously demarcated. Prior research into Korean colonial period cinema has largely ignored this blurring of boundaries and generally focused only on that era’s Korean films themselves, rather than carefully considering the close relationship between the Japanese cinema industry and Korean film. In the present paper, I use statistical analysis of film advertisements from the Korean-language Maeil-shinbo(每日申報) and Japanese-language Gyeongseong-ilbo(京城日報) to objectively examine the development of Joseon cinema in the colonial period. From the era of moving pictures when films opened up a new dimension of media, there was constant deliberation on the definition of film as a genre. With the recognition of video works as a type of commercial product, those works began to take on a commercial character and a process of genre-blending began to take place. In the early period of cinema’s introduction in Korea, both the Korean public and intellectuals were so focused on film as a ‘media’ that they failed to fully recognize it as its own separate genre, and numerous lines of critical discourse propagated under this misunderstanding. As film made its transformation as a genre and investigations into its status as an independent genre continued, perspectives recognizing film’s mass appeal, entertainment value, artistic worth and commercial potential were formed, and film assumed an established commercial and artistic position. Through this process, the dynamic relationships between Joseon Koreans, Japanese, and Japanese residents of Seoul manifest themselves in many ways, commercially, artistically, and critically. Because of this, it is necessary to discuss the history of Korean cinema in the colonial period with an understanding of the relationships between these closely-intertwined groups. Based on the literary discourse that unfolded in modern newspapers and magazines, as well as concrete data on the movie advertisements run in the Maeil-shinbo(每日申報) and Gyeongseong-ilbo(京城日報), I re-analyze the genres, market, and audience base of the movie industry in the early-modern period. In doing so, I attempt to go beyond a perspective limited by race or nation to approach the history of Korean cinema as the history of the regional cinema industry, and try to thereby highlight the influence of ‘Gyeongseongin(京城人)’ on the commercial and artistic development of film. In the second chapter, I focus on colonial Seoul as a place where boundaries of race and nation broke down and efforts were made at commercial integration, and propose ‘Gyeongseongin’ as an abstract group. Letting Seoul represent political and economic autonomy, I use ‘Gyeongseongin’ as a sign signifying the membership of an individual as a modern urbanite in a community distinct from other groups. The localization of racial and national boundaries would lead to an attempt to commercialize nationality and racial identity?the result of a focus on media itself, rather than content, in the process of merging new forms of media. In the early days of the emerging film industry, neither audiences nor intellectuals possessed any awareness of film as a genre. As cinema developed, colonial-period Korean writers began approaching film as a literary art form and participating in the film production process, but there was an obvious difference between the tastes of writers and the tastes of audiences. This was because of the market principle that, while the linking of unitary consumers with a plurality of producers results in increased choices for the consumer, it 일본인 작가가 경성에서 창작하여 『경성일보』에 처음 발표한 작품은 가히 경성인에 의한, 경성인을 위한 공연이라고 평가할만하다. ‘영화극’이라는 표현처럼 영화는 독립적 영상물을 지향했고 이런 장르적 인식은 ‘영화’ 문예 자체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관찰과 모색으로 이어져 ‘장르로서의 영화에 대한 인식’으로 전환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인식은 문인들의 문예적 입장보다는 대중 문예의 상업적 판단이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 1925년 이후, 영화 담론은 생산자 · 수용자라는 산업적 측면과 조선·일본·경성이라는 지역적 측면을 주목했다. 조선인 수용자의 비평담론( 『매일신보』 독자투고란)은 미국영화에 영향을 받은 ‘오락성’과 조선인의 ‘전통적 정서’ 등이 강조되었고, 일본인 수용자의 비평담론( 『경성일보』 독자투고란)은 유럽영화에 영향을 받은 ‘서구적 문예성’과 일본의 ‘전통 문예성’이 함께 강조되었다. 한편 경성인의 생산자 비평담론(신문·잡지의 기사와 광고)은 제작과 비평론의 측면에서 ‘시대정신’, ‘문예성’, ‘상업성’, ‘대중성’ 등의 키워드가 사용되었다. 수용자의 주관적 인상비평과 생산자의 문예적 비평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경성은 점차 독립적 영화 시장과 경성인의 영화 문화를 형성해감으로써 근대 영화 장르의 형성과 발전에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본 논문은 초창기 영화산업의 형성기에 일본의 영화산업이 조선의 영화산업에 미친 영향과 조선에서의 영화 장르가 어떻게 정착되고 생산되어 갔는지를 『경성일보』, 『매일신보』의 구체적인 통계 분석을 바탕으로 고찰하였다. 조선이라는 새로운 영화 시장에서 대중들의 영화 담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무엇을 논했었는지와 그들의 담론이 흥행했던 영화 작품의 실상과 어떻게 관련되지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못한 것은 이 논문의 한계이며 자료의 한계이기도 하다.
Contents
I. 서론 = 1 1. 연구사 검토 및 문제 제기 = 1 2. 연구 방법론 및 연구의 시각 = 13 1) 연구 방법 = 13 2) 연구의 시각 = 20 II. '경성인'의 형성과 영화 산업의 통합적 지향 = 23 1. 지역으로서의 '경성'과 '경성인'이라는 기표 = 23 1) 지방조선인과 '경성인' = 23 2) 재경일본인과 '경성인' = 24 2. 신문 광고의 영향과 이원화된 영화 취향 = 29 1) 영화 취향 형성에 미친 신문 광고의 영향 = 29 2) 지식인의 예술적 영화 취향 = 32 3) 대중의 오락적 영화 취향 = 43 3. 영화 산업의 형성과 통합과정에 나타난 대중적 지향 = 55 1) '시장', '장르', '관객'의 형성 = 55 2) 대중적 지향으로의 통합 = 79 III. 영화에 대한 비평적 인식 형성과 영화 담론의 확대 = 84 1. 영화수용 과정에 나타난 영화 인식의 변화 = 84 1) 영상성 지향으로 인한 문예의 다변화 = 84 2. '장르적' 인식에서 '비평적' 인식으로 확장 = 100 3. 영화 담론과 비평의 층위 = 104 1) 조선인 수용자의 비평담론 - 리얼리티와 현실성 = 105 2) 일본인 수용자의 비평담론 - 일본적 예술성 = 111 3) 경성인의 생산자 비평담론 - 실현가능한 흥행성 = 116 IV. 결론 = 125 참고문헌 = 128 부록 : 코딩 설계표 = 135 Abstract = 143
Holdings Information 1
TKC03901_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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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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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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