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극장(부산)
Management No. EKP000373
- Active Period
- 1914-00-00 ~ 1973-08-27
- Organization Type
- 국내 Organization
- Operating Status
- 미상
- Country
- 대한민국
Introduction
-극장명: 문화극장 (文化劇場) -개명극장명: 보래관(寶來館) → 국제영화극장(國際映畵劇場) → 문화극장(文化劇場) -위치: 부산시 중구 창선동 -'문화극장(文化劇場)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 부산시 중구 창선동 1가 15번지(중구 광복로 45)에서 일본인 오노하이루(小野入)가 설립한 보래관(寶來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연극전용 극장이었으나, 개관 4개월 후인 1915년 3월 9일 활동사진 상설관으로 변신하였고, 1920년대부터는 행관(幸館), 상생관(相生舘)과 함께 부산의 3대 활동사진 상설관으로 자리잡았다. 목조건물이었던 보래관은 1928년 한 차례 개축했다가, 1938년 10월 5일에는 3층 규모, 925석의 3층짜리 현대식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신축, 재개관했다. 일제강점기 보래관은 대표적인 친일극장이었고, 친일 계몽 어용영화 <거경전>(1944) 외에는 단 한 편의 조선영화도 상영되지 못했다. 광복 후 적산(敵産) 극장으로 관리되어 미군전용극장인 국제영화극장(國際映畵劇場)이 되었다가, 1948년 10월 미군이 철수하면서 문교부가 관리하였고, 극장장으로 중국에서 항일예술활동을 했던 한형석(韓亨錫)이 임명되었다. 그는 사비를 투입하여 1950년 6월 18일, 예술극회의 <지족선사와 황진이>를 개관작으로 문화극장(文化劇場)의 문을 열였다. 그러나 개관 일주일 후 6.25 전쟁이 터지면서 문화극장은 1950년 9월 1일부터 10월 6일까지 임시수도 부산의 국회의사당으로 이용되었다. 전쟁으로 뜻하지 않게 극장을 잃은 한형석은 부산 서구 부민동에 자유아동극장과 색동야학원을 만들어 어린이들을 위한 사업을 펼쳤다. 국회의사당으로 전용된 문화극장은 이후 미군 위안극장(Special Service Theatre)으로 바뀌었다가 1953년 4월 화재로 극장의 기능이 상실되었다. 한편 1953년 11월 27일 발생한 부산역전 대화재로 부산 우체국이 전소되었는데, 문교부는 부산 문화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문화극장을 체신청이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여 한동안 우체국 용도로 사용되었다. 1954년 6월 30일 체신청으로부터 반환된 후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의용촌의 상이용사들에게 운영권이 주어졌다. 그리고 1959년 4월 18일 문화극장은 이규환 감독의 <애련의 꽃송이>(1959) 상영을 시작으로 재개관하였다. 시설 개보수 후 1층 514석, 2층 358석, 총 872석을 갖추게 되면서 외화전용 개봉관으로 오랫동안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인근 남포동 일대에 부영극장, 국도극장 등 신설극장이 들어서면서 시설면에서 밀리게 되었고,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벤허>(1959)를 고별작으로 1973년 8월 27일, 개관 59년 만에 폐관하였다. 현재 그 모습이 사라지고 5층 규모의 상업 건물이 들어섰다.
History
| Description | Established | Ended |
|---|---|---|
| 문화극장(부산) | 1914-00-00 | 1973-08-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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