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ography 241
Actor (241)
- 구봉서, 3일이 천직이 된 배우 김현범 • 2001 인터뷰
- 한눈으로 지켜온 영화인생 촬영감독 배성학 김정희 • 2000 인터뷰
- You First 심우섭 • 1980
- Weak Mind 심우섭 • 1979 설사장
- Male Housekeeper 이형표 • 1979 고사장
- Towards The High Place 임원식 • 1977 구신도
- An Extremely Good Luck 심우섭 • 1975 삼용의 사부
- Travel Throughout Korea 이명식 • 1974
- A Couple's Shift 김응천 • 1972 공수래(말단 월급쟁이)
-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강대철 • 1972
Awards 1
| Festival | Year | Award | Film |
|---|---|---|---|
| 제1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63 | 특별상(집단연기상) | 돌아오지 않는 해병 |
Career
- 1926년: 아버지 구연손과 어머니 최명선 사이의 외동 아들로 평안도 평양에서 출생. 생후 사흘 후 서울시 서대문구로 이주했다.
- 1931~1938년: 서대문 유치원 재학 중 경성방송국(JODK)에서 동화구연을 시작으로 교동초등학교 시절까지 국어낭독 등 라디오 방송활동을 했으며 중학교 시절 간혹 악기 연주 등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 1943년: 대동상업고등학교 수학 중 태양극단 따라다니며 잡역부 노릇.
- 1945~1949년: 김용환 단장에게 픽업되어 태평양 악극단 악사 역할을 하다가 대역배우로 배우 생활을 시작. 전속단원이 되어 5년간 활동했다.
- 1949~1953년: 1949년 선무공작대에 입대. 곧 선무공작대가 육군 군예대로 개편되면서 군예대 생활을 시작했고, 같은 해 백조가극단으로 옮겨 악극단 생활도 계속한다. 3차례에 걸쳐 군예대 입대 및 제대를 거듭하는데, 휴전이 되던 1953년에는 제주도 육군훈련소 군예대에 있었다.
- 1954~1957년: 해병대 연예대 창단을 도와 상사로 입대하고, 태평양악극단을 끌여들여 함께 활동한다. 이후 1955년 만기제대한다.
- 1956~1980년: <애정파도>(문화성)로 영화 데뷔한 이래 <오부자>(권영순, 1958) ,<구봉서의 벼락부자>(김수용, 1961),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만희, 1963), <남자 미용사>(심우섭, 1968), <남자와 기생> (심우섭, 1969), <남자는 괴로워>(김수용, 1970) 등 약 4백 여 편의 영화에 주조연으로 출연했다.
- 1958~1961년: 양훈, 양석천, 곽규석 등과 함께 쇼단체 코미디 코리아 활동
- 1952~1989년: kBS <홀쭉이와 길쭉이>를 시작으로 <안녕하세요 구봉서 입니다>, <막동이 가요만보>, <7대 코미디언쇼>, <웃겨보세요> 등 MBC, TBC, DBS, 극동방송 등 각 방송사에서 1980년대 후반까지 약 70여개의 라디오 방송을 진행했다.
- 1969~1985년: MBC <웃으면 복이와요>, <부부만세> 등의 코미디 프로그램, 시트콤에 출연
- 1992~1994년: MBC <웃으면 복이와요>에 출연
- 1997년: 자서전「코미디 위의 인생」(석필) 출간
- (저술내용)자서전「코미디 위의 인생」(석필,1997)
Biography
1926년 평양에서 출생했고, 생후 사흘 후 서울시 서대문구로 이주했다. 대동상업고등학교에서 공부했으며, 태평양 악극단을 통해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1949년 선무공작대에 입대, 이후 선무공작대가 육군 군예대로 개편되면서 군예대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해병대 연예대 창단을 돕기도 하면서 군에서의 연예 활동을 지속하다 1955년에 만기제대 했다(한국영상자료원). 1956년 문화성 연출의 <애정파도>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후 권영순의 <오부자>(1958), 박시춘의 <삼등호텔>(1958), 김수용의 <구봉서의 벼락부자>(1961), 이만희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과, 구봉서를 전면에 내세운 “남자 시리즈”인 심우섭의 <남자 식모>, <남자 미용사>(1968), <남자와 기생>(1969), 김수용의 <남자는 괴로워>(1970) 등에 출연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그럼에도 그의 수상경력은 1966년 제2회 대일영화상 특별상, 1967년 제2회 백마상 특별연기상, 1968년 제2회 남도영화제 희극배우상 등 몇 편에 그치는데, 이는 그의 연기력과 활동 폭, 인기 등을 고려했을 때 당대 영화계가 희극 배우와 작품에 대해 인색했기 때문임을 짐작할 수 있다. 1952년부터는 KBS <홀쭉이와 길쭉이>를 시작으로 <안녕하세요 구봉서 입미다>, <막둥이 가요만보>, <7대 코미디언쇼> 등 MBC, TBC, DBS 등에서 1980년대 후반까지 라디오를 진행했으며, 1969년부터 1985년에 이르는 시기까지 MBC <웃으면 복이와요>, <부부만세> 등 인기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방송계에서 희극배우로서의 경력을 이어나갔다(한국영상자료원). 방송계에서의 공헌으로 그는 2000년 MBC 코미디언부문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며, 2006년 제13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연예예술발전상을 수상했다. 구봉서는 친근한 매력으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랑을 받은 몇 안 되는 배우였다. 그는 “주부들이 보면 좀 무능하고 특징없는 남편 같고, 남자들이 보면 어수룩하지만 푸근한 친구 같고, 노인들이 보면 풀쑥풀쑥 내미는 품이 꼭 마음 놓이지 않는 조카나 친자식 같고, 애들이 보면 어려운 데라고는 한 군데도 없는 삼촌이나 이웃아저씨 같”은 “만만한” 매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얼굴이다(동아일보). * 참고문헌 동아일보 1978년 2월 11일자 5면 한국영상자료원 편, 『2008년 원로영화인 구술채록사업 생애사 구봉서』, 한국영상자료원, 2008.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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