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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 Dae-sun

강대선

Field
Production/Planning, Director
Debut
모란이 피기까지는(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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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ography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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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ards 3

FestivalYearAwardFilm
제9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1973 영화부문 시나리오상 판사부인
제46회 대종상 영화제 2009 공로상 -
제47회 대종상 영화제 2010 영화발전공로상 -

Career

1950년대 초 「영화세계」 기자 활동
1950년대 후반 비판신문, 국제신보 문화부 기자 활동
1950년대 후반 유한영화사 창립
1960년대 초 신필림 입사. 기획실장, 연기, 섭외부장 활동
1969년
형 강대창, 강대진과 함께 삼영필름 창립(1986년 각자 독립)

Biography

강대선은 대학시절 사촌누나 강인순(姜仁淳)이 사장으로 있던 영화잡지「영화세계」의 기자로 영화계에 입문했다(동아일보). 이후 비판신문, 국제신보의 문화부 기자로도 활동하였다. 1960년대 초, 전성기를 누리던 신필름에 입사해 기획실장, 연기 및 섭외부장을 했다. 이후 형인 강대창, 강대진과 함께 삼영필름을 창립해 영화연출을 시작했다. 감독 데뷔작은 <여고생의 첫사랑>(1971)이었다. 강대선은 연출 초기 과감하게 신인배우를 주연으로 기용하였으나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지 못해 고전을 겪었다. 그러나 신인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여고시절>(1972)이 여고생 관객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으며 흥행에 성공하여 흥행감독으로 자리매김을 하였으며, 이 작품의 흥행 이후 하이틴영화 붐이 일어나기도 했다(한국영화를 말한다). 1974년에는 대만과의 합작영화 <5천리 대도망>(1974), <나이도 어린데>(1974)를 연출, 제작했했는데, <5천리 대도망>은 합작영화 사상 처음으로 대만의 국영영화사인 중앙전영(中央電影)과 함께 만든 영화로 동남아와 유럽, 미국 등지에 50만 달러에 수출되었다(매일경제). 1990년에는 남북한 영화교류를 추진하여 분단 이후 처음 남북 영화가 한자리에서 상영되는 뉴욕남북영화제를 개최시켰다(한국영화를 말한다). * 참고문헌 한국영화사연구소, 『한국영화사 구술총서01 한국영화를 말한다』, 한국영상자료원 편, 이채, 2004, 10~27쪽. 동아일보 1958년 12월 23일자 3면. 매일경제 1974년 5월 24일자 8면. * 기본정보, 주요경력-한국영화를 말한다, KMDB참조 * 한국영화감독사전에는 감독 데뷔작이 <소녀의 첫사랑>(1971)으로 되어있으나 <여고생의 첫사랑>(1971)의 다른 제명이거나 오기로 판단됨. 뉴스검색에도 <여고생의 첫사랑>으로 나옴. * 1988년 한국영화업협동조합 이사장-경향신문 1988년 3월 11일자 13면. * 1983년 영화인협회 이사장-경향신문 1983년 7월 13일자 3면. * 1979년 감독분과위원회 위원장-경향신문 1979년 1월 26일자 5면. * 1987년 영화업자협회 회장-경향신문 1987년 12월 26일자 3면. [작성: 김성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