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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Sohn In-ho

Sohn In-ho

손인호

Field
Production Sound
Debut
모녀(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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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ography 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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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ards 7

FestivalYearAwardFilm
제3회 대종상 영화제 1964 녹음상 돌아오지 않는 해병
제7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1971 영화부문 기술상 필녀
제13회 대종상 영화제 1974 녹음상 토지
제15회 대종상 영화제 1976 녹음상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
제17회 대종상 영화제 1978 녹음상 과부

Career

어린 시절 수풍댐 건설로 고향이 물에 잠긴 뒤 중국 장춘으로 이주
1944년
장춘실무고등학교 졸업
1946년
평양에서 열린 관서콩쿠르대회에서 1등 수상 후 청운의 꿈을 안고 월남
KPK 악단에서 가수 생활
1953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후 공보처 영화과 녹음실 근무

Biography

1927년 평안북도 창성에서 태어났다. 창성보통학교 6학년 시절, 수풍댐으로 마을이 수몰되게 되자, 가족 모두 만주 장춘으로 이주해 생활하다, 광복 후 신의주로 돌아온다. 평양에서 열렸던 ‘관서 콩쿠르대회’에서 ‘집 없는 천사’를 불러 1등을 하는데, 이 때 심사위원 중 한명이 소질을 살리려면 이남에 가라는 권유를 받고서 형과 함께 서울에 내려온다. 작곡가 김해송이 이끌던 KPK 악단에 가수로 뽑혀 활동하다가 전쟁이 발발하자 군예대(軍藝隊)에 들어가 활동하였고, 제대 후 문화공보부 국립영화제작처에서 일하며 ‘대한뉴스’ 녹음과 영화 녹음을 시작한다. 이즈음 영화 녹음일을 하던 매부 이경순과 함께 ‘한양녹음실’을 세운다. 이경순과 함께 영화 녹음을 위해 녹음기를 들고서 방방곡곡을 누비며 한국영화의 사운드 라이브러리라고 할 만한 것을 만들어내고, 천둥 소리, 빗소리, 총소리 등 음향 효과를 스튜디오에서 개발하는 등 한국 영화 음향에 있어 지대한 공헌을 한다. 한양녹음실은 1961년대 개장하여 1990년대까지 대략 3500편의 한국 영화 녹음을 작업하였고, 그 가운데 2000편 가량이 손인호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다. 그는 또한 유명 가수이기도 한데, 녹음 작업 틈틈이 오아시스 레코드사의 전속 가수로서 한 달에 몇 곡씩의 의무 녹음 곡수를 채우며 ‘비 내리는 호남선’, ‘울어라 기타줄’, ‘해운대 엘레지’, ‘하룻밤 풋사랑’ 등 1950~60년대 히트곡들을 발표하기도 했으나, 방송은커녕 무대에도 나선 적이 없어 아내조차 결혼하고 나서야 남편이 가수인 줄 알았다고 전해진다. (서울신문 a,b) * 참고문헌 서울신문a 2006년 4월 27일 서울신문b 2006년 5월 4일 [작성: 황미요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