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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Kwang-su

박광수

Field
Director, Production/Planning
Debut
판놀이 아리랑(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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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ography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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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ards 10

FestivalYearAwardFilm
제25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1989 영화부문 신인감독상 칠수와 만수
제27회 대종상 영화제 1989 신인감독상 칠수와 만수
제42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 1989 Youth Jury Award: Third Prize 칠수와 만수
제9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 1989 신인감독상 칠수와 만수
제11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 1991 감독상 그들도 우리처럼

Career

1979년
실험극단 활동
1980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재학 중 영화써클 '얄라셩' 활동을 통해 단편 작업
1982년
연우무대 활동 시작. '서울영화집단' 창립 후 활동
1985년
프랑스 영화학교 E.S.E.C 졸업
<이장호의 외인구단>의 조감독

Biography

1955년 1월22일 강원도 속초 출생. 부산으로 이사가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쳤으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나왔다. 1990년도 한국영화의 새로운 물결을 연 기수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1982년 대학 영화동아리 얄랴성 출신들을 규합하여 ‘서울영화집단’을 만들어 비판적 리얼리즘에 입각한 영화제작 및 이론을 지향해왔다. 그후 그는 프랑스의 영화교육특수학교(E.S.E.C)에서 체계적인 영화연출 수업을 쌓는다. 1985년 귀국한 감독은 이장호 감독 밑에서 연출부 생활을 하다가 1988년 <칠수와 만수>라는 영화로 데뷔한다. 당시 인기를 끌었던 동명의 연극을 각색한 이 작품의 성공으로 감독은 새로운 한국영화의 물결이 도래했음을 예고하게 된다. 그리고 2년 후 그의 대표작이 될 <그들도 우리처럼>을 만들어 ‘의식 있는 청년 감독’이라는 명성을 얻게된다. 특히 그가 1990년대 초에 만든 이 작품은 당시 한국사회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분단의식과 이로 인해 악화될 수밖에 없는 사회문제(노동문제) 등을 집약적으로 표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은 탄광촌을 배경으로 하여 운동권 수배자 한태훈(문성근), 자본가의 아들(박중훈) 그리고 다방레지 송영숙(심혜진)의 표면상 삼각관계를 축으로 전개되는 단절과 불화의 이야기다. 즉 이 영화는 그러한 관계에 있는 다양한 인물들의 복잡한 그물망을 통해서 우리 현실의 근본적 모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그의 치열한 문제의식은 이를 영화적 언어로 형상화해내는데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감독의 비판적 리얼리즘의 시각이 돋보이는 문제작이라 하겠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그의 데뷔작인 <칠수와 만수>에서도 이미 감지되고 있다. 이 영화도 역시 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서 제대로 자신의 뜻을 펼 수 없는 두 젊은이의 고뇌와 좌절을 그리고 있다. 우리의 주인공 칠수(안성기)는 좌익활동을 했던 아버지 탓에 연좌제에 묶여 퇴출당하고, 또 다른 주인공인 만수(박중훈)는 양공주 출신 어머니 탓에 삐딱한 인생을 살아가다 결국 사회적 편견의 희생양이 된다는 얘기다. 이 작품으로 그는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청년비평가상’을 받았다. 그는 세 번째 작품인 <베를린 리포트>(1991년)에서 앞의 두 작품에서 나타난 주제의식을 보다 구체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그가 분단이라는 지극히 민감한 현실적 주제를 들고 나왔을 때 평단의 반응은 우려반 기대반이었다. 시대적 분위기상 반공영화의 아류로 전락할 여지도 다분했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통독 이전에 동독에 입양되었던 두 남매의 기구한 인생을 남한의 민완기자 성민(안성기)이 취재 보도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부르주아 가문에 입양된 동생 영희(강수연)는 양부의 성적노리개로 전락하고, 북측에 포섭된 오빠 영철(문성근)은 골수 혁명분자로 탈바꿈한다. 결국 국적 없이 떠돈 두 남매의 비극적 이야기인 셈이다. 감독은 한국사회의 고질적 문제점인 해외입양이라는 표면적 소재와 분단이라는 무거운 주제의식을 아우르려는 야심을 가졌지만, 평단의 반응은 냉담했다. 인물 설정이 너무 도식적인 데다가, 사건 전개의 보편성도 제대로 획득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현실이라는 중압감이 너무 컸던 탓이리라. 그러나 그는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다시 한번 분단의 장벽에 도전한다. 그는 1993년 임철우의 동명원작을 바탕으로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영화를 만든다. 분단문제는 우리민족(남북한)이 겪고 있는 우리만의 특수성이므로 전작에서처럼 동독을 매개로 한 해결방식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감한 것이다. 영화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여름바다에 꽃상여가 떠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6.25 사변이 한창일 때 그 섬에 살다 떠났던 문덕배(문성근)가 망자가 되어 고향을 찾은 것이다. 그런데 마을사람들은 한사코 꽃상여의 섬 진입을 가로막는다. 좌우대립의 극한적 상황 속에서 상당수의 마을사람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들 재구는 아버지의 업보 탓에 장사마저 제대로 치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분단체제가 극복되지 않는 한 분단의 업보는 대대손손 이어질 것임을 이 영화는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다섯 번째 작품으로 한국 노동운동사의 기념비적인 인물인 전태일 열사의 삶과 죽음을 다룬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년)을 만들어 또다시 평단을 들끓게 했다. 전태일의 실존적 행적을 다룬 흑백영상과 그를 추억하는 한 지식인의 고뇌를 다룬 컬러영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이 영화는 일반관객에게도 크게 어필했다. 그해 청룡영화상에서 작품상 및 감독상을 수상했고, 1996년 베를린영화제 본선에 진출하기도 했다. 이처럼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무장한 채 직-간접적으로 분단의식을 집요하게 추구해오던 그는 세기말인 1999년 <이재수의 난>이라는 역사영화를 들고 나온다. 이 영화는 구한말 당시 천주교도들을 보호하고자 했던 관군과 이에 맞서 항쟁을 벌였던 제주도 민중간의 벌어졌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주제의식의 일탈이 아니라 오히려 그 분단의 뿌리부터 새롭게 정립하고 싶은 그의 또 다른 야망의 표현이었다. 제작 당시 30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자본을 들여 만든 대형 프로젝트였으나 흥행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크게 어필하지는 못했다. 대규모 자본을 들인 사적영화(예술영화)라는 비판도 받았다. 이후 그는 디지털 영화 등의 실험적 제작방식에 몰두했는데, 그 결실이 여섯 명의 감독이 한 에페소드씩을 맡은 <여섯 개의 시선>(2003년)이라는 옴니버스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