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ography 51
Awards 1
| Festival | Year | Award | Film |
|---|---|---|---|
| 제15회 대종상 영화제 | 1976 | 감독상 | 원산공작 |
Career
- 감독협회 이사 역임
- 국방부 홍보영화 13편 연출
- MBC 반공드라마 공모 당선 '살아야 할 땅은 어디냐'
- 1986년
- 장인필름 대표
- 2009년
- 인천 유스필름페스티벌 예산심사위원장
- 감독협회 이사
Biography
설태호는 함경남도 단천 출신으로 6·25가 발발하자 19세의 나이에 홀로 남한으로 피난을 왔다. 북한에 있을 때는 단막극 연기를 한 적도 있었다. 그는 <첫사랑>(1958)의 시나리오를 쓰며 영화계와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살아야 할 땅은 어디냐」가 MBC 드라마 공모에 당선되었고 이것을 1963년 직접 연출을 맡으면서 감독으로 데뷔하였다(한국영상자료원). <YMS 504의 수병>(1963)을 이만희 감독과 공동 연출하기도 했는데(인터뷰365), 해병대에서 복무한 경험을 살려 <YMS 504의 수병>(1963)을 시작으로 <신화를 남긴 해병>(1965), <영호 작전>(1967), <특공대와 돌아오지 않는 해병>(1970), <원산공작>(1976), <캐논청진공작>(1977) 등을 통해 탁월한 전쟁영화 연출력을 보여주었다. 그를 흥행 감독으로 만들어 준 것은 ‘용팔이 시리즈’였다. 박노식이 주연한 <남대문 출신 용팔이>(1970년)가 크게 흥행하면서 설태호는 흥행 감독의 대열에 올랐다. <역전출신 용팔이>(1970), <운전수 용팔이>(1971), <신입사원 용팔이>(1971), <위기일발 용팔이>(1971) 등이 흥행하면서 주인공 용팔이(박노식)가 사용하는 전라도 사투리가 유행하기도 했다(경향신문b). 그는 반공액션물인 <원산 공작>(1976년)으로 1976년 대종상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원산 공작>은 아시아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면서 해외수출에도 성공했다. <원산 공작>은 당시 최고 수출가인 2~3만 달러에 대만과 일본에 수출되었다(경향신문a). 그는 첩보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어 <특별수사본부 기생 김소산>(1973), <특별수사본부 제2탄 여대생 이난희사건>(1973) 등을 연출했다. 1986년에는 장안필름을 설립해 창립작으로 미국 올로케이션 작품인 <엘에이(LA) 용팔이>(1986)를 제작·연출했다. * 참고문헌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설문조사, 2001. (http://www.kmdb.or.kr/actor/mm_basic.asp?person_id=00001391&keyword=설태호) 경향신문a 1976년 11월 24일자 8면. 경향신문b 1995년 4월 4일 23면. “독특한 영상 언어 작가 이만희가 남긴 것”, 인터뷰365, 2008/06/17. (http://interview365.com/client/news/view.asp?sidx=1915) [작성: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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